나뭇가지의 질문법 - 박남희
세상이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찰 때
뾰족한 것으로 허공을 찔러대기보다는
조용히 이파리를 매달 것
그 이파리로 얼굴 붉히고
그 이파리가 울다가
그 이파리로 어디론가 굴러가
다보록한 흙에게 썩는 법을 배울 것
그리하여 제 이파리 모두 떨구고
허공이 온통 맑은 날
공중에 오래된 바람 소리 풀어놓고
눈물같이 여린 초승달 하나 낳아놓을 것
그러고는 안으로 안으로
의문의 강을 풀어내어
나이테의 두께를 늘려갈 것
그런 후에는
바람 밑에 숨겨두었던 뿌리에게 넌지시
물의 안부를 물어볼 것
*시집,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걷는사람
이제는 - 박남희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기우는 것은 빨리 파는 것이 남는 것이지요
술잔을 생각하면
저녁하늘이 붉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누가 술에 조금씩 어둠을 섞어 하늘에 버렸을까요
이제는 별을 팔아야겠습니다
벌을 받아야겠습니다
술 취한 별이 모여서 막걸리처럼 흐르는 것을 사이에 두고
영영 벌 받기 위해
견우와 직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하늘을 팔아야겠습니다
죽어서 말이 없는 자와
살아서 눈물 흘리는 자가 흘려보낸 시간 속
자꾸만 기울어지던 중심을
바다 깊숙이 가라앉힌 채 인양할 줄 모르는
저 석양을 팔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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