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참 더러운 중년이다 - 이중도

마루안 2020. 4. 26. 19:00



참 더러운 중년이다 - 이중도



꿈에서 만나는 똥은 돈이라 한다

그래서 똥 꿈을 꾼 아침은 기분이 좋다

출근길에 똥차를 만나면 마음이 은근히 들뜬다


늦게 일어난 월요일 오늘은 아예 분뇨처리장 쪽으로 산책을 간다

초로의 칡넝쿨이 보라색 꽃들을 달고 있다 철장에 갇힌 잡종견이 목청껏 짖어댄다

깊은 호흡으로 처리장을 마시고 지나가니 은행 하나를 들이마신 포만감이 느껴진다


참 더러운 중년이다


내 아버지의 중년은 새벽에 나가는 멸치 배 선단 같았는데

멸치 배들이 두툼하고 성스러운 엔진 소리 같았는데

마흔여덟에 상처하고 홀로 네 자녀를 키운 아버지의 중년은

싱싱한 비를 잉태한 먹구름 같았는데 고구려의 떡갈나무 같았는데


어젯밤 술자리에서 계산 안 하고 도망간 놈을 연락처에서 지울까 말까 고민하는

나의 중년은 더럽다 뱃속이 똥으로 가득 차있다

생각은 똥 더미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고 입은 똥구멍이다


냄새를 숨기려고 괄약근을 꽉 조이고 다니는데

입이 자꾸 벌어진다

똥은 달변가다

더러운 중년이 더럽게 말도 많다



*시집, 사라졌던 길들이 붕장어 떼 되어 몰려온다, 천년의시작








해무 - 이중도



북적거리던 경매꾼들 사라지고

원양의 생선 퍼 나르던 동남아 사내들의 수화(手話) 남루한 숙소로 돌아가고

비린내에 미쳐 난민처럼 떠돌던 갈매기 떼 노을 속으로 떠나고

늙은 포구에 적막, 검은 함박눈처럼 내린다


싸구려 화장마저 지워버린 고전적 작부의 낯짝 같은 포구의 뒷골목에는

빛바랜 생선 비늘 덕지덕지 붙이고 쌓여 있는 나무 상자들

어지럽게 뒹구는 불구의 어구(漁具)들

팔뚝의 힘줄 모두 거세된 이들 소줏집 침침한 백열등 밑에 모여

하역(荷役)의 일생이 남긴 훈장들을 자랑하고

자본의 부리에 한쪽 눈알 뽑힌 이들

조로한 철선으로 흘러 들어가 집어등을 손질하고


진종일 고린내 피우는 황금 나무 곁에 박혀 있던

트럭 가득 색색 국화꽃 환한 꽃 섬의 주인은

자장면 한 그릇 핥아 먹고 어디로 갔는지

유언처럼 흘리고 간 꽃송이에서 짙은 해무 피어오른다


흙의 자식들, 삽으로 흙 파먹고 살아라

금의 자식들, 금이빨 되어 뜯어먹고 살아라

안개의 자식들, 안개 속을 헤매다가 안개로 돌아가거라


적막의 허기를 채우며 눅눅한 해무

포구를 점령한다






# 시를 읽다 딱 내 얘기여서 무릎을 칠 때가 있다. 중년이 되면서 자꾸 뭘 떨어뜨리거나 흘리고 다닌다. 휴대폰도 흘리고 음식도 흘리고 소변도 한두 방울 꼭 흘린다. 아직 괄약근 조이는데 무리는 없으나 무언가를 자꾸 설명하려고 한다. 말이 많아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더러운 중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