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 백무산 시집

마루안 2020. 4. 23. 21:20

 

 

 

창비 시집을 좋아한다. 창비는 시집을 많이 내는 대형 출판사 중에서 가장 나와 궁합이 맞는 시집을 낸다. 그동안 참 많은 시집을 읽었지만 그중 창비 시집이 가장 많을 것이다. 내용이 가장 좋지만 다른 요소도 창비 시집을 좋아하는 이유다.

가격도 적당하고, 크기, 디자인, 종이질까지 창비 시집이 가장 무난하다. 크기가 너무 커도, 표지가 너무 딱딱해도 시집은 읽기 불편하다. 다른 책에 비해 시집은 여러 번 읽기 때문에 이런 요소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가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시집 세 권쯤은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춘문예 같은 화려하게 데뷰를 하고 장기간 잠수 타는 시인이 부지기수인 현실에서 시력 10년은 넘겨야 세 권이다.

아마도 백무산 시인은 시집 <인간의 시간>부터 만났을 거다. 초기 시집은 나중에 복간본으로 읽었다. 이후 창비(창작과비평사)에서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데 이번 시집도 올림픽 주기로 창비에서 나왔다. 그만큼 시 쓰기가 꾸준하다는 거다. 

이전 시집 <폐허를 인양하다>를 읽고는 이보다 더 나은 시집은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 시집도 시의 힘이 여전해서 놀랍다. 이렇게 시종일관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꾸준한 시를 쓰는 사람도 드물다. 더구나 노동시를 말이다.

초기 시가 너무 좋았던 어느 시인은 시집 몇 권 내더니 밑천이 바닥 났는지 아니면 열정이 식었는지 갈수록 시가 비실비실 매가리가 없어 아쉬웠다. 적어도 백무산 시인은 앞으로도 한 서너 권쯤은 거뜬히 힘 있는 시를 쓰고도 남을 것이다.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시인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노동 현실을 까칠하게 지적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갈수록 지능이 높아지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무장 해제하려는 세상에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일침을 놓는다.

상대적이 아닌 절대 가난에서 벗어나 30년 전보다 배가 부른 것은 맞다. 그러나 노동자끼리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까마득한 간격으로 벌어졌다. 세상 이런 곳곳의 단절을 시인은 <사람의 말>에서 아프게 지적한다.

<우리의 현란하고 뒤틀린 문법 때문에/ 할머니 말을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나는 손이 두개지만/ 할머니는 세개였다/ 할머니에게 말은 또 하나의 손이었다>. 노동과 말은 넘쳐나는데 그 과잉 때문에 현실이 공허하다.

<감나무 한 그루가 돛대처럼 지키고 있는 집/ 저녁 연기가 목화솜처럼 깔리던 집>, 시인은 아직도 희미한 그 집에 가고 있고 갈수록 멀어지는 그 집으로 소 한 마리 끌고 수십 년 동안 돌아가는 중이다. 오래 읽고 싶은 좋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