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낮달이 허락도 없이 - 이서화 시집

마루안 2020. 5. 3. 18:23

 

 

 

첫 시집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두고 있던 시인이었다. 손꼽아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새로 나온 시집 목록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일천한 내 지식으로 시 비평을 하는 것은 언감생심, 그냥 시가 참 마음에 와 닿았었다는 기억이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설렌다. 이번에 어떤 시들이 실렸을려나. 좋아하는 감독의 새 영화를 보기 위해 불꺼진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설렘이라고 할까.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그래, 무명 독자가 낮달처럼 허락도 없이 불쑥 감상을 쓴다. 

좋은 시를 가슴에 담고 그 시를 잊지 않기 위해 또박또박 한 자씩 옮겨 적는 마음 또한 나름 즐거움이다. 한글 막 익히기 시작한 아이가 길가의 간판을 한 자씩 읽는 희열, 그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아이의 눈동자처럼 시집에 오래 눈길이 갔다.

이 시인의 정체성을 확신하기는 잠시 미룬다. 내 나름의 규칙 때문이다. 적어도 시집 세 권쯤은 내야 온전히 그 시인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겠다는 규칙이다. 이 시인처럼 첫 시집이 인상적이면 두 번째 시집도 좋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평범하거나 다소 남루한 일상을 잘 이겨낸 장삼이사의 삶을 섬세하게 관찰한 시인의 시심에 깊은 공감이 간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을 소환해서 아련한 옛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시가 많아서 더욱 그럴 것이다. 

자고로 시는 읽으면서 마음이 열리는 시가 좋은 시다. 특히 이 시집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담긴 시가 여럿 실렸다. 멀고도 가까운, 때론 애증으로 점철된, 핏줄만큼 따뜻하면서 아픈 것이 있을까.

<등 저쪽의 일들은 버린 지 오래인 아버지/ 저녁 쪽으로 마음 준 지도 오래다>. <잔불까지 사그라지길 기다리던/ 아버지가 일어서고/ 귀밑에 숨겨 둔 흰 연기 몇 올 보였다>, 30년 전의 반추는 <이젠 궁리마저 늙어> 지루해진 아버지를 담는다.

가슴에 맺힌 것을 잘 발효시켜 빼어난 서정성으로 가득한 시인은 <젊은 날이 화려하게 기억되는 듯/ 자꾸만 뒤돌아보는 아버지>를 오십 년을 살고 나서야 <이불 빨래처럼 아버지 한숨 탁탁 털어드리고 싶은 날>을 발견한 것이다.

거창한 역사성이나 시대적 거대 담론 없이 평범한 시어로 독자의 마음을 잔잔하게 훔치는 시다. 시인이나 나나 <익숙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불행인가>. 이 평범한 역설적 싯구가 더욱 마음에 담긴다. 좀 더 시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좋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