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꿈꾸는 중심 - 황원교 시집

마루안 2020. 4. 14. 23:13

 

 

 

이 시집은 손으로 쓴 시가 아니라 입으로 쓴 시를 묶은 책이다. 입으로 썼다니까 시낭송을 녹음한 낭송 시집처럼 들리는데 황원교는 사지마비 장애인이다. 그는 입에 나무 젓가락을 물듯 컴퓨터 마우스 스틱을 물고 한 자 한 자 시를 쓴다.

시인을 안 것은 몇 년 전 <오래된 신발>이라는 시집을 읽고서다. 장애인이 된 후로 한 번도 땅을 딛지 않은 신발을 가슴 시리게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절실하게 사는 이유가 있겠지만 시인은 시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시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시인이 살아온 인생 역정을 알아 보자. 1959년 춘천 출생인 시인은 강원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고 ROTC 포병장교로 복무했다.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1989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딱 서른 살이었다.

결혼을 1주일 앞두고 혼사 문제로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고 매제가 몰던 차였다. 차 안에 있던 신부가 될 사람과, 여동생, 운전을 한 매제는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뒷자리에 탔던 시인만 경추 부상을 당해 죽음을 넘나드는 3년 여의 투병을 한다.

목 아래 모든 것이 마미된 시인은 사랑하던 여자도 떠나 보내고 절망했다. 먹는 것부터 배설까지 모든 것을 가족에 의존하는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수없이 자살 충동을 느꼈다. 단 1분 동안만, 한 손이라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기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다. 자기 손으로 밥 한 술 먹을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다 7년 동안 먹이고 대소변 받아내며 수발을 들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인생 전환점이 된다.

자기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이겨내고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다짐을 한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그는 문학 청년이었다. 그의 세 번째 시집 발문을 쓴 최준 시인이 황원교의 문학 청년 시절을 잘 말해 준다.

애초부터 그는 시인이 될 운명이었을까. 몸 속에 숨겨진 문학적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고 연주가 아니듯 문장을 쓴다고 모두 시는 아니다. 시인은 입으로 꾹꾹 눌러 쓴 시를 다듬고 다듬어 절절한 싯구로 완성한다.

절망을 딛고 선 시는 그리 어둡지 않다. <그저 매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혼신을 다해 사는 것은/ 섣달의 납매처럼/ 보란 듯이 생을 꽃 피워보는 일/ 그리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시리도록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참으로 희망적이다.

그리고 <사람이어서 정말 다행이다>고 한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 팔순이 훨씬 넘도록 시인을 돌보던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고 지병을 앓던 남동생도 세상을 떴다. 아내까지 암 수술과 재발을 반복하면서 시인의 시름은 더해 걌다.

이 시집 <꿈꾸는 중심>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련 속에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떤 일이든 꾸준함이 어렵다. 시인은 사고를 낸 매제를 용서했다고 한다. 시가 만들어낸 용서다. 운전자의 가슴에도 무거운 죄책감이 평생 올려져 있을 것이다. 모쪼록 오래 시 쓰는 시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