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글쎄, 꽃마중은 - 정덕재

마루안 2020. 4. 19. 21:28



글쎄, 꽃마중은 - 정덕재



겨울이 제법 추웠던지

마음이 얼었던지

일주일이나

열흘 남짓 참지 못해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남녘으로 가면서

소주 냄새 풀풀 풍길 필요가 있는지


제때 피는 언덕에

눈길 주는 것도 벅찬데

지는 꽃잎

돋아나는 새순 바라보기에도

눈이 시린데

뭘 그리 달려가

꽃 지랄을 떨어야 하는지


꽃 마중 가는 길에

속도를 내는

걸음이

갑자기 얼어붙고

꽃잎이 웅크리는 이유는

불편한 소동이

불편해서다



*시집,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걷는사람








잎이 서운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 정덕재



이십오 년째 벚꽃을 피우는 나무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다가 정신을 차린 뒤 바리톤의 저음으로 한마디 한다


열흘 붉은 꽃을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늦가을까지 붙어 있는 잎을 보며

열광한 적이 있느냐

꽃 진 자리를 지나치는 걸음이

유혹은 항상 꽃처럼 시든다는 걸

금세 잊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이냐

지워져가는 생이 얼마나 서글픈지

잎 진 자리를 보며 통곡하던 날들을

왜 그리 일찍 잊었느냐

분명

서운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 정덕재 시인은 1966년 태어나 부여에서 자랐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배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남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시집으로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 <나는 고딩 아빠다>, <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