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내가 화가다 - 정일영

마루안 2020. 4. 3. 19:03

 

 

 

책 제목도 인상적이지만 젊은 여성이 빤히 바라보는 그림에 끌려 고른 책이다. 나의 영화 고르는 기준이 배우보다 감독이 먼저고 책을 고르는 기준은 유명 작가보다 내용물이 알찬 책이다.

그렇다고 저자를 안 보고 책을 고를 수는 없다. 책 소식을 꾸준히 접하고 있는 내게도 정일영 작가는 완전 무명이다.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도 베일에 싸서 실려 있어 작가를 검증하기가 더욱 애매했다.

천상 내용물을 보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몇 장 들추고는 바로 선택했다. 책 판형은 작지만 안에 들어있는 그림은 호기심 가는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요즘 유독 회자되는 여성주의를 다룬 영양가 있는 내용물로 꽉 찬 야무진 책이다.

화가와 시인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여성이 많은 편이다. 주변에도 내가 시 읽기와 그림 감상을 좋아한다고 하면 문학소녀도 아니고 무슨 그림과 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처럼 그런 걸 좋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가능하면 티 안내려고 하지만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다. 좋아 하는 그림 책 다 읽고 싶고 좋은 시 실린 시집 전부 읽고 싶다. 시간과 돈도 없고 눈이 아파서 그저 희망사항에 그칠 것이다.

이 책은 여성 화가의 그림들로 이뤄졌다. 요즘이야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가 활동이 제약을 받는 경우는 없다. 학벌이나 인맥으로 끼리끼리 무리지어 다니느라 작품보다 줄 서기가 더 중요할 뿐이다.

예전에 여성 화가는 악세사리에 머물렀다. 남성 작가의 모델이거나 조수이거나 했다. 이 책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작품을 남긴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책은 외국 작가가 쓴 번역본을 읽었는데 정일영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

프리다 칼로, 케테 콜비츠, 수잔 발라동 등 남성들의 소모품으로 사라질 처지를 극복하고 명작을 남긴 화가들이다. 그들 인생 또한 영화처럼 파란만장하다. 드라마틱한 인생 덕분에 그들의 작품이 더 빛나는 것일까.

일부러 그렇게 산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는 어쩌다 생기거나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안에 담긴 예술혼을 꺼낼 수밖에 없는 열정이 없다면 작품은 나오지 않는다.

표지 그림인 <드로잉 하는 젊은 여인의 초상>은 애초에 유명 남성 화가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당연 평론가들은 이 그림을 극찬했다. 나중 <마리 드니즈 발레르>라는 여성 화가의 그림으로 밝혀지자 극찬이 혹평으로 변한다.

오랜 기간 미술 문화를 공부한 저자의 깨알 상식으로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다시 보는 기회가 되었다. 밥벌이는 싫어도 해야하지만 가능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기에 그림책과 시집을 열심히 읽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