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소심한 사진의 쓸모 - 정기훈

마루안 2020. 3. 16. 19:15

 

 

 

이런 책은 무조건 읽는다. 까다로운 책 고르기에서 이렇게 따뜻한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스마트폰 시대여서일까. 세상엔 사진이 넘쳐난다. 이미지 과잉 시대다. 사회관계망 서비스에도 사진 없이 소통할 수 없을 정도다.

책도 사진도 넘쳐나는 시대에 과연 진지함을 담고 있는 것이 몇 개나 있을까. 왜 모든 것이 진지해야만 하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맞다. 모든 것이 진지할 필요는 없다. 책도 영화도 만화도 심심풀이로 소비하기도 한다.

심심할 시간이 없는 나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범생은 아니지만 막 살고 싶지 않은 몸부림이다. 그동안 막 살면서 인생을 낭비했기에 더욱 그렇다. <소심한 사진의 쓸모>, 참 저렴하게 살았던 소심한 나도 쓸모가 있을까.

이 책의 저자 정기훈은 어쩌다 카메라를 잡았다가 사진 찍는 일로 밥을 빌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라는 아주 생소한 언론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당연히 그는 잘 나가는 사람보다 소외된 계층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런 사람이 쓴 책을 좋아한다. 누구나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질 수 있고 취재 자유를 무한으로 누리는 요즘, 잘 나가는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그런 사진일수록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한강의 야경, 국립공원 일출 등은 아무나 찍고 익숙한 풍경이다.

저자는 세상에 있으나 잘 보지 않는 곳을 찍는다. 이 책이 소중한 이유다. 보도 기자든 풍경 작가든 사진가라면 누구나 가는 곳을 몰려다니지 말고 안 보여서 못 찍고, 보고 싶지 않아서 안 찍는 곳에 있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눈길을 확 끌지는 않으나 사진에 붙인 배경 글을 읽으면 사진이 달리 보인다. 노숙 농성을 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얼굴이 도로에 고인 빗물에 본사 빌딩과 함께 비치는 사진 같은 경우 보도 사진이면서 빼어난 서정성까지 담겼다.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기교가 아닌 가슴이 시켜서 찍은 사진이다. 낮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없으면 찍히지 않는다. 드레스 입은 여배우나 뽀시시한 풍경을 배경으로 꽃 사진만 찍는 사람은 보여도 찍을 수 없는 사진이다.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곡예를 부리 듯 일을 하다 죽은 비정규직 노동자.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벼랑 끝에 선 해고 노동자 등 저자의 사진은 그들과 아픔을 함께 했기에 애틋한 감동을 준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은 소심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