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 강응천

마루안 2020. 4. 8. 19:12

 

 

 

내 이름에 심한 컴플렉스가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항렬에 따라 갖다 붙이다 보니 발음과 표기가 따로 논다. 내 이름을 전화로 불러주면 거의 100% 틀린다. 한 자씩 떼서 반복해서 불러줘야 한다. 내가 원하지도 않은 이름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게 힘들어서 개명까지 생각했지만 이것도 내 운명이겠거니 하고 살기로 했다.

헌법에도 나오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지독한 반공 세대라서 북한의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한참 후에 알았다. 무찌르자 공산당, 북한 괴뢰, 간첩 신고, 때려잡자 김일성 등 무지막지한 구호 속에서 자랐다.

죽음을 불사한 선배들이 피와 눈물로 일군 민주화 덕분에 이런 책도 읽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가끔 완전히 개방된 청와대 앞길를 걸을 때면 민주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실감한다. 친구네가 청와대 가까운 부암동이었다.

예전에 청와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고 호기심에 기웃거렸다가는 불순분자로 경찰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해야 했다. 그런 공포 시대 지나고 청와대 앞에서 태극기 할배들 확성기 틀어 놓고 데모하는 것 보면 참 좋은 세상임을 실감한다.

신기한 건 통일과 민주화를 외치며 싸우다 죽은 민주 열사들 덕에 이런 세상이 왔건만 태극기 할배들은 여전히 빨갱이 타령을 한다는 것이다. 대입하면 빨갱이 덕분에 청와대 앞 도로를 점거하고 음식 나눠 먹으며 데모해도 되는 세상이 온 셈이다.

대한은 조선조 말 고종 황제가 제정한 대한제국에서 시작되었다. 대한제국은 얼마 못가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이 처음 언급된다. 임시정부는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추대한다.

이후 임시정부는 정파에 따라 분열하기 시작한다.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이라는 말을 선호하면서 우파는 대한민국을 좌파는 조선으로 갈라진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겠다고 모인 단체부터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지 못했고 이후에도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분단이 고착화 되는 과정을 생생히 알려준다. 강대국들이 뭐가 아쉬워서 힘 없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겠는가. 분단은 해방 후의 혼란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우리 잘못이다.

남과 북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 고려라는 국호가 논의되기도 했다. 미군정 시절 김규식과 여운형은 예비 국호를 고려공화국으로 제시했다가 불발된다. 그리고 1973년 김일성은 <조국통일 5대 방침>으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연방제를 제안한다.

어쨌든 좌조선 우대한으로 갈라져 통일 정부를 위한 서로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남쪽에 이승만의 주도로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국호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은 삼한에서 따왔고 인민은 북에서 쓴다는 이유로 배제되어 민국이 된다.

이후 우리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금기시 되었다. 이승만이 남쪽에 단독 정부를 수립하면서 북도 북쪽만의 정부를 수립했고 분단은 고착화 되고 만다. 냉전 시절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서로 자기가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영어만 Korea로 표기할 뿐 전혀 다른 국호다. 우리는 한반도라고 하지만 북한은 조선반도라고 부른다. 현재도 일본이나 중국은 남쪽을 한국, 북쪽을 조선으로 표기한다. 엄연히 말하면 유엔에 별개의 나라로 가입한 각자의 독립국가다.

이 책의 장점은 남쪽 위주의 서술이 아닌 균형 잡힌 시선으로 냉정하게 분단의 역사를 조명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국호 제정 당시 목표는 통일 국가였다. 민족의 비극인 분단의 역사도 70년을 훌쩍 넘었다.

갈수록 통일은 멀어지고 있다. 학교 다닐 때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무색하다. 이제는 통일에 앞서 평화가 먼저다. 경제, 문화, 민주화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이 압도를 하고 있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때 평화도 따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