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하루만 더 살고 - 한관식

마루안 2020. 3. 22. 19:07



하루만 더 살고 - 한관식



당신보다 하루만 더 살고 뒤따르리다

이승의 인연 모나지 않게 정리하고

당신 곁에 묻어 달라 유언하며

사랑한다는 그 말,

숨결 여린 당신 무덤 발로 다지며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는 그 말

함께 보낸 세월 속에 들려주리다

땅거미 지면 나 또한 준비하고


그랬던가요? 우리의 아침과 우리의 청춘은 언젠가 바닥을 보이겠죠 오래 울고 상처를 내치지 못하여 쩔쩔매는 내가 당신께 가기 위해 발돋움을 한 당신이 깨어나지 못하는 어느 하루일 겁니다 추억의 모서리가 닳도록 기억하며 이 세상에서 만난 당신으로 온전히 살았다고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한 적이 있나요 잡은 당신 손을 놓아줄 때 내 손도 놓아주리다 그것이 또 다른 시작임을


땅거미가 옵니다

당신 떠나는 것 보았으니 그 길 알고 있어 총총히 길 나서면 따라잡을 수 있으리다



*시집, 비껴가는 역에서, 도서출판 미루나무








아침 - 한관식



신문을 읽다가

내가 신문지보다 더 얇다는 생각에 밑줄을 친다

찬밥을 덮어주고 노숙자의 육신을 덮어주고 번번한 좌절을 덮어주는 틈새에 내가 있었다

일전에 화분 몇 점을 샀는데 점원은 정성껏 신문지로 포장하여 건네주었다

구김살까지 공을 들이는 점원의 손가락을 유심히 지켜봤다

단지 신문을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남겨 둘 것을 정리하다가 맹목적인 나의 언어가 보였다

그만큼 서성거리는 신문도

그만큼 목을 맬 신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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