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한 영화다. 소기업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는 진무는 뇌수술을 받으면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다. 기억을 잃기 전에 그동안 떨어져 살아야 했던 가족을 찾아 나선 진무는 캠코더에 가족의 일상을 담기 시작한다.
간만에 엄마를 찾아가 함께 밥을 먹는다. 근사한 외식이 아닌 방바닥에 놓인 밥상에 찌개와 김치를 놓고 먹는 소박한 밥상이다. 진무 가족은 엄마, 형, 누나까지 4인 가족이지만 서로의 울타리가 아닌 굴레였다. 자신 또한 가족을 돌보기보다 자기 한몸 챙기기 버거운 가난한 노동자다.
진무는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재혼으로 진무를 낳았다. 엄마는 아버지 없이 진무를 키웠다. 형과 누나는 성이 다르거나 배 다른 남매들이다. 엄마는 딸을 홀로 키우다 아들 하나 딸린 남자와 재혼을 했던 것이다.
그 사이에서 진무가 태어났지만 늘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로 인해 산산히 부서진다. 아버지의 첫 여자도 맞는 것이 두려워 도망을 갔고 그걸 모르고 엄마는 이 남자와 결혼했다. 엄마는 맞을 때마다 이 남자를 칼로 죽여버려야지 했는데 남자는 알아서 죽어줬다.
무책임하게 인생을 탕진한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은 자식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엄마는 벽지에 곰팡이와 얼룩이 덕지덕지한 집에서 살고 큰 아들은 오래도록 소식이 없다. 누나도 결혼을 실패해 홀로 아들 하나 키우며 산다. 진무 또한 서른 여섯 살이지만 혼자다.
부모 잘 만났으면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엄마에게 염색을 해주고 예쁜 한복을 입혀 캠코더로 찍으며 묻는다. 이름은? 신숙녀, 나이는? 몰라, 좋았던 시절이 있었어? 없었어. 지난 날이 신산하기만 했던 엄마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하다.
맞다. 인생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진무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20년이 넘도록 돌보지 않아 봉분 위에는 잡목이 무성하다. 저절로 수목장이 되어 버렸다. 처음엔 매장, 20년 후엔 수목장, 수목장의 원조다.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한 아버지가 이렇게 나무 뿌리 아래 누워 있다. 미웠던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까. 이 영화는 조민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1993년 생인 조민재 감독은 고등학교 때부터 선방공으로 일을 하며 영화를 공부했다. 첫 작품이다.
영화 한 편으로 이 감독을 정의할 수 없지만 자질은 충분하다. 얼마나 꾸준하게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실제 감독은 선반공을 그만 두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돈 없이 영화 찍을 수 없는 현실에서 이런 감독에게 영화 찍을 기회가 올 것인가.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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