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양 꿀 - 성봉수

마루안 2020. 3. 2. 19:27

 

 

사양 꿀 - 성봉수


낡은 도꼬리를 걸치고 길을 나선다
늘어진 주머니 안에서 나를 꼼지락거려도
네게 내줄 것이 없다

고래 그물이 되어 버린 가난의 주머니

오늘로 돌아와 도꼬리를 벗는데
절망과 포기의 그물 칸칸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과 코와 입술과 잔잔한 웃음

바랄 것 없이 내게 채워
살아, 봄 햇살 아래 서게 했던
그해 내 검은 겨울 안의



*시집, 바람 그리기, 책과나무






침을 발라라 - 성봉수


고갈된 난자
맘이 더 이상 고이지 않는 가랑이를 벌려 다가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네 안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면
침이라도 발라야 했다
그리움의 독을 박박 긁어
여름 한낮 운동장에 날리는 흙먼지처럼 목이 타도록 침을 발랐다

달거리를 잃은 여인네는
전설 같은 오르가슴의 기억을 잡고 밤새 허리를 꼬며 안달하였으나
마른 가슴을 하고는
내 어느 하나도 옳게 맛볼 수 없는 일이었다

등 돌려 누운 여인아
그 밤, 네 맘 언저리를 돌며 적셔 주던 것은 찍어 바른 내 침이었다
진작에 가진 몸 톡톡 털어 다 내주고도
가슴 방망이질치며 다시 옷 벗고 마주 서거들랑
허벅지를 꼬아 움켜쥐고 네 그리움의 간절한 침을 발라라
너의 진실에 침을 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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