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다 바라보는 법 - 박대성

마루안 2020. 2. 6. 19:33

 

 

바다 바라보는 법 - 박대성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사는 일은

한때 뜨개질을 좋아했고 한때 사과를 좋아했고

한때 봄을 좋아하던 사람과 사는 일은

바다로 가는 일

 

오래라는 것이 모래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살아온 날들이 모래 더미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그 사람이 파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같이 사는 일은 파도가 되는 일이라고

함께 바다가 되는 일이라고

바다가 보이는 데에 올라

모래들의 푸른 작문을 읽는 일이라고

 

아주 오래전

갈매기가 되고 싶었을 사람을 내가 여직

붙들고 있는 일이라고

 

산다는 것은 바다로 가는 일

오래된 사람을 바다로 데려다주는 일

그 사람을 갈매기로 날려 주는 일

갈매기 날게 해주는 일이라고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황금알

 

 

 

 

 

 

동명동 터미널 아리아 - 박대성

 

 

예쯤 온 사람들은 새로운 시동을 걸어야 했다

법원 뒷길 고물상 지나온 사람들은 명태를

갯배 건넌 사람들은 마른오징어를

중앙시장 양길이는 야반도주한 아내의 주소를 들었다

 

금강운수 강원여객에서 내린 사람들은

서울서 대구서 부산서 왔다

 

지린내 코 찌르는 변소 건너

매표원 아가씨는 똑딱똑딱 껌을 잘 씹었다

 

버스는 집집이 서주지 않았다

 

새벽 첫차

서둘러 돌아오고픈

간성 양양 사람들은

근처에 쪽방 하나 두고 싶었다

 

밤늦은

대전 목포 사람들도

근처에 쪽방 하나 두고 싶었다

 

버스는 집집이 서주지 않았다

 

수복탑 가까운 여기

등대 가까운 여기쯤

쪽방 하나 두고 싶었다

 

즐비했던 여인숙

꿈꾸던 쪽방

 

사글 사글 늙던

사람들이 있었다

늦은 운전수와 샛별 안내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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