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오만가지 일을 해온 육체 노동자가 있다. 배관공, 벽돌공, 시신씻기 등 영화는 그가 거친 직업을 열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한 면접장에서다. 이제 그도 일용직을 마감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져 돈을 버는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영화 제목에도 나오는 리키다. 그는 택배노동자로 일을 시작한다. 택배 트럭은 아내의 중고차를 팔아 보증금을 내고 할부로 산다. 몇 시간을 일하던 할당된 택배 배달로 수수료를 챙기고 일을 못할 경우 대체 노동자를 비싸게 구해야 한다.
한국의 택배 기사처럼 영국도 회사에 고용된 자영업자다. 아내는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그녀 또한 멀든 가깝든 돌 본 사람 수에 따라 돈을 받는다. 그래서 부부는 하루 열 시간 넘게 일할 때가 태반이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에 지쳐 골아 떨어진다.
부부에게 십대인 두 자녀가 있다. 동생인 딸은 착한 반면 문제는 사춘기 아들이다. 부부가 밤낮으로 동동거리며 일을 하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일을 줄이면 되겠지만 어느 세월에 빚을 갚고 셋집을 벗어날 것인가.
아들은 불량기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를 친다. 학교에 불려가고 정학을 당하고 심지어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혀 유치장에 갇힌다. 아들을 전과자로 만들 수는 없다. 아들을 자기처럼 평생 고단한 노동자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택배 일을 하루 쉬고 경찰서에 간다. 합의가 되어 무사히 아들을 데려 왔지만 그날 손해가 막심하다. 아들을 훈계하다 되레 반항하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다. 내일부터 더욱 열심히 일해 손해를 메꿀 생각인데 아들이 트럭 열쇠를 갖고 가출을 했다.
속절 없이 또 하루를 쉬었다. 이런 저런 손해로 빚을 갚기는 커녕 빚을 지게 생겼다. 리키가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하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맞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동동거리는 리키의 삶이 안쓰럽다.
우리보다 잘 사는 영국 이야기다.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칸 영화제에서 함께 경쟁했던 작품이다. 기생충 못지 않게 묵직한 주제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런 영화를 만든 켄 로치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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