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징잡이 - 조유리

마루안 2020. 1. 29. 19:33



징잡이 - 조유리



쇠가 우는 것을 보았다 명치 한복판을 헐어
골 깊은 수렁 온몸으로 안아내고 있는 사내
그러니까 저 사내는 칭칭 동여매진 손아귀 힘으로
돋을새김 된 울음의 무늬를 변주하고 있는 것이다
제 심장부를 오래 에돌다 터져 나오는
상처의 결을 해왕성 그늘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고도로 숙련된 꾼의 울대에서라야 완성된다는
울음잡기, 그러니까 놋쇠덩이는 십리 밖으로 파동쳐 갈
젖은 음역의 전생인 것이다
태생 이전부터
사내의 지문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


쇠가 운다 피돌기를 따라
파문이 번진다 상모를 돌리는 상쇠처럼
어지럽다 가슴이 함몰된 깊이만큼 여울이 생기고
바람이 쇳물을 길어 나르는 동안


어떤 연(緣)은
한 세계의 테두리를 오래 맴돌다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지 못한 채 거두어진다
관계와 관계 사이의 간극이란
일 백 송이 동공이 피었다 지는 동안
헐린 허공의 문이다


일생동안 그 문 한 축 일으켜 세우기 위해
사내는 가슴뼈를 다 탕진했다



*시집, 흰 그늘 속 검은 잠, 시산맥사








천문(泉門) - 조유리



아기를 낳다 죽은 여자가 발굴되었다
산도를 빠져나가지 못한 태아의 머리가
문지방에 걸린 자세로
물구나무서 있다

 
덜 여문 시간에 당도한 문턱
삐그덕 열린 틈으로

 
젖꼭지를 물리기 위해
잰걸음질하였을 텐데
숨이 닳도록
애 끓였을 텐데


간질거리는 잇몸에 적두죽을 발라주며
행여 엎질러질 새라

 
숨골까지 걸어 잠근 채
죽은 힘은로 새끼를 껴안고 있는
저 문설주


필사적으로 지극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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