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두부 중년 - 정윤천

마루안 2020. 1. 21. 19:27



두부 중년 - 정윤천



국거리란 말이 맞춤했다 감나무 가지에 올라 촐싹대다가 그가 더 높은 가지에서 떨어졌다 성이 국씨여서 재중의원 병실에 국그릇처럼 너를 엎어놓고 돌아왔다 사흘 밤이 지난 뒤에야 붕대에 감싸인 국이 돌아왔다


친구들을 불러 모은 국의 어머니가 고깃국을 내왔다 국물이 가을 저녁 속으로 염치도 없이 넘어갔다 핼쑥해진 국의 표정 같은 두부 건더기들이 국속에는 담겨 있었다


검은 봉지 안에 국거리를 다짐받아 나오는데 감나무 가지 위로 다시 올라가 보기에는 늦은 것 같았다


두부나 한 모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집, 발해로 가는 저녁, 도서출판 달을쏘다








풋달 - 정윤천



자취방 창틀 밖에선 고양이들이 자주 울었다 주인집이 가난했다 그 집의 살림으로는 여우 울음소리 같은 걸로 바꾸어주기엔 힘에 겨워 보였다 자취방도 가난해서 빤스를 빨아 윗목에다 젖은 울음소리처럼 널어 주고는 하였다 옆방에 신혼살림이 세를 들고 나서야 빨랫줄 한 쪽에서 제대로 물든 물감 팬티를 힐끗거려볼 수 있었다 빨간 자전거를 직업 삼아 끌고 다니던 주인아저씨는 마음씨가 사뭇 착해 있었다 하루는 당신의 처가 쪽들이 몰려와 그가 너무 물러서 살림이 여물지 않는다는 말꼬투리들을 깠던 적도 있었다 아저씨의 처가 쪽들이 물러가면서 감나무 두 그루를 까치밥도 남기지 않고 벗겨 간 사실이 남아 있었다 옆방에 든 젊은 남자는 착해 보이지 않아서 나중에라도 잘살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측간 문을 다급하게 밀쳤다가 희고 참한 달이 결려 있었다 주인집 딸도 빨간 자전거마냥 착해 빠져서 손바닥으로만 얼른 가려 주었다


상기도 푸른 기억 속에 떠 있던 풋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