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몸 생각 - 이영광

마루안 2020. 1. 17. 21:32



몸 생각 1 - 이영광



다급하면 물에도 뛰어들고 불도 움켜쥐듯
도구가 부족하면 손이 나서고
두 손이 다 모자라면 입이 나선다
집다가 안 되면 잡고 잡다가도 안 되면
무는 것이다 더 나설 것이 없을 땐
몸이 몸소 나설 수밖에 없다
찻길에 뛰어든 아이에게 달려드는 어미의
혼비백산이나, 지금 눈앞에서 깔깔거리며
모텔 문을 열고 나서는 저 아이들의
땀에 젖은 한두 시간 전처럼
시든 몸이나 젊은 몸이나 사랑할 때나 죽을 때나,
불에 덴 그 몸이 굼뜬 몸뚱이를 화들짝
밀치고 나오는 것이다 몸주(主)라고 해야 할
이 황망한 것은 평생 그칠 줄 몰라
이 짐승을 배고 낳고
배고 낳고 하느라 지상엔
임산부 아닌 몸이 없고,
영혼의 실종 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그렇게 몸은 얼었다 풀렸다 하며
여기가 바다인가 뭍인가 내내 헷갈리는
한겨울 황태 덕장의 명태처럼 말라 가는 것이다



*시집,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요양원 - 이영광



젖을 어떻게 빨았더라?


빨 것도 빨 힘도 없는 구멍들이 헤-
허공을 물고 있다


이 방 저 방 한꺼번에 젖을 물리느라
허공은 나타날 새가 없다


삶은 변변히 약 한 첩 못 써봤는데
요양원은 벌써 죽음을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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