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쇳밥 - 김종필

마루안 2020. 1. 15. 22:36



쇳밥 - 김종필



꽃가루 설거지 비 내려 더 부산한 화요일
프레스 발판을 밟을 때마다
쇳밥 한 숟가락이 쏙쏙 쌓이고
해진 철판을 따라 파란 불로 녹여 붙일 때마다
설움의 목구멍이 깊다
식은 밥 한 숟가락을 퍼 먹기 위하여
내 속에서
한 숟가락을 퍼내는 일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새의 마음으로
저물녘이면
쇳밥 한 봉지 물고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비틀거리며
새끼야,
큰소리를 치며
저문 강 건너 집으로 가겠지
끅 끅 목 메이는 늙은 프레스야
붉은 기름 한 방울 한 방울이 내 마음이다



*시집, 쇳밥, 한티재








핫 프레스는 70°- 김종필



지금 등에 끓는 핫 프레스는 70°
목덜미에는 열꽃이 오들오들
나의 봄은
부들부들 떨리는 겨울인 까닭이지


배부른 자들의 갈퀴 채찍은
등을 붉게 물들였고
눈 감고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바람에 애타는
숨 가쁜 노동이었음을


그래, 누가 등 떠밀지 않았다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는 일 바꾸라 마라
덕분에 밥은 먹고 살았으니
뜨거움에 더 뜨겁게 감사할 일


내일을 모르고 살아온 시간
가위 한번 잡은 적 없는 자들이
거북이 등에 업혀서
바다를 건너려는 토끼처럼
동지라는 이름으로
마음대로 노동의 가치를 늘리고
싹둑 잘라 먹는 엿 같은 세상
기필코 보여 주마
겨울 내내 언 몸으로 버틴
동백이 뜨겁고 아름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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