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명상 - 황원교
매일 너에게로 간다
한때 꿈꾼 적이 있으나 사랑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원한다면 삶이라는 고통부터 만끽하라던 고흐의 말이 무색하게
더러는 사무치게 그리워한 날도 있었으나....
생각해보라!
단 하루도 바람 앞의 촛불 같지 않은 날이 있었던가
그 길은 오로지 일방통행이며
마침내 만나는 수천수만 길의 벼랑 끝
가눌 수 없는 허무의 종착지인 줄 알면서도
매일 너를 향해 나는 간다
머지않아 이 고달픈 여정과 수고가 끝나고
나 홀로 향내 그윽한 적멸(寂滅)에 들지라도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쓸쓸할 일인가
정말 두려운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앞서간 이들을 내가 쉬이 잊어버렸듯이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가뭇없이 내가 지워지는 일
세상 어디에도 좋은 죽음이란 없으며
죽음은 참혹한 슬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자루의 촛불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타올라서
모두에게 기억되는 아름다운 이별을 하자
어느덧 누런 플라타너스 잎처럼 뒹구는 생이여
날이 갈수록 절룩이는 발걸음이지만
너무나 멀어 가닿을 수 없는 별과 같은
금지된 사랑 하나 가슴에 품은 채
매일 너에게로 나는 간다
*시집, 꿈꾸는 중심, 도서출판 시가
설중납매(雪中蠟梅) - 황원교
섣달 눈 속에 핀 납매처럼
정말 미친 듯이
사랑을 피워보는 일,
그런 뜨거운 열망으로 하루하루를 살리라
산다는 것이 죽어가는 일이라면
불쑥 예고 없이 찾아와 문 두드릴
얼음장보다 차가운 그 손을 잡아야 하리
잡아야 하리, 그때가 언제든
맨 처음 이 세상에 나올 때
잠깐 빌려 입고 온 몸뚱이조차 내 것 아니듯
본래부터 내 것이란 없었으니
그저 매 순간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혼신을 다해 사는 것은
섣달의 납매처럼
보란 듯이 생을 꽃 피워보는 일
그리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시리도록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
푸른 불꽃 일으켜
눈 속에서 두 눈 부릅뜨고
내 앞의 겨울과 눈싸움이라도 한 판
걸지게 벌여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
돌아보면
체 게바라와 같은 꿈도 배짱도 없었던
허망한 육십갑자였다.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을 사랑해야 했고,
견디고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 무엇이 두려우랴.
어느덧 상처들도 굳은살로 박혀
단단한 맷집이 되지 않았는가.
무릇 살아 있는 게 기적이고 은총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일이 궁금해서 죽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채굴을 멈출 수가 없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승엔 주소가 없다 - 이원규 (0) | 2020.01.17 |
---|---|
몸 생각 - 이영광 (0) | 2020.01.17 |
폭설, 그 흐릿한 길 - 심재휘 (0) | 2020.01.16 |
쇳밥 - 김종필 (0) | 2020.01.15 |
적당한 존재 - 김준현 (0) | 2020.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