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계수리공의 장례식 - 박서영

마루안 2020. 1. 9. 21:28



시계수리공의 장례식 - 박서영



모든 죽음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흰 벽에 걸린 시계가 물고기처럼 가고 있다

저 부드러운 지느러미

한 번도 만진 적 없어서 아름다운 지느러미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더 아름다운 지느러미

나는 시계 속의 무량한 구멍으로 당신을 느낀다


장례식에서도 시간의 주유소는 번창하고 있다

울음을 뒤덮고 남은 웃음으로 지폐를 세는 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시계를 본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밥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심각하게 앉아 있는 시간의 덩어리들


당신은 두려운 이미지만 남긴 채 웃고 있구나

평생 시계 속의 파닥거림에 몰두한 당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 끼운다


심장을 너무 많이 찌른 바늘이

마음의 귀신을 파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시집, 좋은 구름, 실천문학








손금과 손등 - 박서영



다방 옆자리 노인이 아가씨 손금을 봐준다 

중년의 아가씨 

부끄럽게 두 손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올리는데 

손등에 파란 혈관이 굵직굵직하다

툭 튀어나온 혈관이 아버지에게 밥을 배달한다 

엄마를 위해 두 손을 모은 혈관은 늘 터질 듯 긴장 상태다 

오빠를 위해 돈을 번 혈관은 이제 콧노래를 부른다

가난한 가족을 가졌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끝없이 손을 갖다 바치는 것 

다방 아가씨 손등엔 

물푸레나무 가지들이 그녀의 재산처럼 뻗어 있다

농부와 어부와 노동자와 예술가 

자연의 체온이 빚어낸 아름다운 손 

손금의 운명이 진화하면 손등의 풍경이 된다

저기 보라,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 바르고 

착하게 웃고 있는 주름살투성이 미스 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