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목판화로 듣는 개의 울음소리 - 송재학

마루안 2020. 1. 9. 21:36



목판화로 듣는 개의 울음소리 - 송재학



수십 마리 개의 울음소리,
통점을 기억하려는 송곳니의 적의가
목판화의 산벚나무 한 겹을 뜯어내고 여백마다 숨어들었다
사육장이 가깝다
뾰족한 나뭇가지는 무심코 허공을 찌르다가 허공에 박혔다
낮달마저 음각된 박제로 멈추었다
다시
개 짖는 소리가
핏물을 버리듯 엎질러졌다
바람이 불어도 도꼬마리 일가는 뻣뻣하게 흔들린다
퀭한 겨울은 거울 속과 다름없는
목판화의 독백 속으로 이동했다
생과 짝을 이루려는
거울은 이미 산산조각 났지만
단색의 강추위 때문에
함부로
깨어지거나 흩어지지 못하고 이 앙다물고 있다
먹물을 가득 묻힌 겨울이다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문학과지성








발자국을 기다리는 발자국 - 송재학



폭설주의보 때문에
눈의 높이를 자꾸 물어보는 침엽수림 사이
발자국이 생겼다
무엇을 삼킨 것인지
깊이가 다른
발자국마다 눈빛이 필요했기에
서릿발 같은 흰 칼이 차례대로 꽂히긴 했지만
깁스한 붕대가 더 시선을 이끈다
눈이 몇 차례 오다 말다 했지만
발자국은 지워져서는 안 될 이유 때문에,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삭정이들이
똑똑, 부러지면서도
눈 소식을 궁금해한다
적설량을 들어 올린 뒤 두터운 새 떼가 날아갔다
흰옷을 입고 흰 깨금발로 지나가는
눈보라의 눈썹 부근에서
누군가 잠시 돌아서서
자신의 발자국을 보았다
따라오지 못하고
떨고 있는 자신의 맨발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