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오무자 - 박인식

마루안 2020. 1. 7. 18:33

 

 

오무자 - 박인식

 

 

남들은 다 갖고

그에게 없는 것 다섯 가지

핸드폰/컴퓨터/운전면허(물론 차도 없지)/TV/신용카드

 

IT세상의 주거부정이자 신원불명

오무자(五無子)

어느 날 평행세계로 망명 떠났다네

 

하루에 해가 다섯 번 뜨고

두 번 져

세 개의 해가 하늘 밝히는

그 평행세계도

이미 IT세상

 

평생 IT를 거부한 역설로

가상현실적 증강현실적

불법체류자로 찍혀 거기서도

추방되고 말았다네

 

존재 의미도

존재 자리도 잃어버린

그는

 

 

*시집/ 러빙 고흐 버닝 고흐/ 여름언덕

 

 

 

 

 

 

공중전화가 알려준 내 사회적 계층 - 박인식

 

 

핸드폰 없는 내게 공중전화는 구원이다. IT세상은 50만 대 넘던 공중전화를 4만 대로 줄여 놓았다. 구원은 오지 않는다 해도 공중전화를 아주 없애지는 못한다네. 공중전화 입으로 구원요청할 수밖에 없는 세 계층-이주노동자와 군인 그리고 (병역을 오래전에 마친 한국인으므로 나는 이 두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극빈층이 멸종되지 않는 한.

 

알로 나마스떼! 저 앙푸르바예요 반년만 더 일해서 목돈 되면 귀국해서 카트만두 큰 병원으로 모실게요

친구! 첫 휴가 나왔어 철원에서 버스 갈아타고 지금 막 동서울터미널에 내렸다고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이 달 말까지는 어떻게 하든 마련해보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면

이주노동자와 장병들과 극빈층 사이에는

강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닌

사람이 인물 아니라

생물로 살아가는

 

공중전화 목을 빌려 아직 살아 있다 목숨 전하는

생물들의 표류기는

잡초로 무성한

섬 아닌 섬

삼각주가 있다

 

 

*정현종 시인의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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