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희미해진다는 것은 - 부정일

마루안 2020. 1. 6. 19:05

 

 

희미해진다는 것은 - 부정일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뭍으로 간 얼굴 떠올려본다

막살이 하나 없이 손 벌릴 처지도 아니었다

자존심마저 흔들릴 때 뭍으로 떠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인연 만들며 살고 있을 사람

 

한때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날들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오로지 절망이어서

쪽박은 깨지 말자 침묵하는 이

어느 포차에 앉아 한 잔의 술을 마신다

 

마리아가 보고 싶다고 내게 오시겠는가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 보내며 언젠가는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강물이 흐르듯 날은 가고 뭇사람이 오고 가는데

오뉴월 깨꽃만 피었다 아주 사소한 일처럼 다시 진다

 

쇠비름처럼 매고 돌아서면 무성한 것이 그리움이라면

희미해진 사람

붐비는 주막, 탁주항아리 동이 났다고 잊혀질까

아주 하얗게 지우지 않는 한

 

 

*시집, 허공에 투망하다, 한그루

 

 

 

 

 

 

평행선 - 부정일

 

 

자기만의 방법으로

열심히 사는 여자였다

혼자서 술을 마신 지 몇 해던가

따로 한 세월 균열된 마음은

봉합의 시기마저 놓쳐

 

빗장은 더욱 견고해져

우리가 같이할 밤은 이미 죽은걸

 

언제였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소홀해질 때

시작은 누구인가

셀 수 없는 다툼은 평행선을 그리고

허기를 면했다고 행복한 삶은 아닌걸

어찌하라고

 

주례 앞에서 네 하는 순간

주사위는 던져지고

동반의 여행에서 삶의 마지막 여분마저

서로에게 차압당한 줄

아마도

믿고 살아온 길이었겠지

 

일탈을 준비한다, 이제

동전의 양면처럼

포기했던 삶 속 한 올의 자존심은

오늘처럼 몸이 뜨겁고 바람 부는 날

더욱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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