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송해 씨 덕분에 - 박대성

마루안 2020. 1. 3. 23:29

 

 

송해 씨 덕분에 - 박대성


한 사람의 생애를 반백 년 넘도록 중계한 예는 없었다
그럴만한 사람도 드물고
그럴만한 생애도 드물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복희라는 이름 덕일까
바람 받지 않을 작달막한 몸피 덕이었을까

일요일의 남자 송해 씨가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며
삼천리 방방곡곡을 불러내면
우리는 모두 우수상 최우수상 후보가 되곤 하는데

무대에 오른
이모 고모 삼촌 조카 당숙이 춤추고
돌 백일 집들이 시집 장가가 춤추고
오대양 육대주 잔치가 되는데

송해 씨보다 젊다
송해 씨보다 목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며

일주일에 한 번 운수 좋으면
우리들의 생애도 인기상 장려상쯤은 될 거라는
딩동댕딩동
그런 꿈을
송해 씨 덕분에 꾸는 것이다.

 

 

시집/ 아버지, 액자는 따스한가요/ 황금알

 

 

 

 

 

 

옆이라는 무덤 - 박대성

 

 

꽃 핀 칫솔, 부러진 안경

그들에게 '이젠 끝이야' 라고 말해 주지 못해

그저 슬그머니 밀어 두곤 했다

 

늘 궁금했다

언제 저들에게

'이제 끝이야' 라고 말해야 하는지

 

한때 나를 따르던

보글보글 거품들

한때 가장 먼 밖을 내다보던 나의

창에게

그동안 참 고마웠다는 말을.....

 

오늘 이 빠진 접시 하나를

찬장 구석으로 밀 때

들릴락 말락 작은 소리를 들었다

 

'그래 이별이란, 그래 슬쩍

그렇게 옆으로 미는 거지'

 

그래, 그렇게 슬쩍 미는 것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무덤

옆이라는 무덤

 

 

 

 

 

*시인의 말

 

시를 쓰는 사람들은 많은데

시를 읽는 사람들이 적다

시 말고도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도대체 시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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