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턱으로 말할 나이 - 육근상

마루안 2019. 12. 30. 22:17

 

 

턱으로 말할 나이 - 육근상


전화통 잡으면 보통 두 시간 얘기하다
내일 엄마 보러 집에 올 거지 안부 묻고는
그랴 내일 보자 그런디 니 신랑 잘 해주냐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콧등 문지르고 미간 찌푸려 한 참 듣다
니 형부 아휴 그 영감탱이가 잘 해주긴 뭘 잘 해줘
다 포기했다 해주면 좋고 안 해주면 더 좋고
빤스 바람으로 텔레비전 보며 킥킥거리는 나를 바라보다
아랫도리 향해 체육복 바지 집어 던지더니
턱 주억거려 얼른 입고 방으로 들어가라며 손사래다

텔레비전 끄고 바지에 발 끼다 생각하거늘
먹을 때도 잘 때도 입을 때도 이제는 턱으로 말할 나이되었느니


*시집, 우술 필담, 솔출판사


 

 



친구 - 육근상


소파 누워 새로 구입한 휴대전화 만지작거리며
사진 찍어보고 인터넷 검색해보고 맛집 알아보고
손쉬운 방법 찾아보다
눈두덩에 떨어뜨려 번갯불도 그려보는 것인데
일주일 지나도록 전화 한 통 없이
대출해준다는 문자뿐이네
고장인가 싶어 집 전화로 휴대전화 신호 보내보고
휴대전화로 집 전화 확인하다 말소리 잘 들리나
딸에게 신호 보내니 바쁘다 끊고
각시는 전화 한 통 없던 사람이 무슨 일이냐
전화 요금 많이 나오니 빨리 끊으라 하고
아들은 통화 중이어서
혼자 사는 정 여사에게 전화 넣었더니 신호 가네
심심하였는지 실없는 농담 다 받아주네
요즘 뭐하고 사느냐 물어보니
새로운 일 시작했다며 자신감 넘치네
호호호 웃음소리 들리네
전화 끊고 따뜻한 액정 만지작거리며
이만한 친구 또 어디 있을까 흡족해 하다
턱 쓰다듬어 보는 것이다

 

 


*시인의 말

내 순정한 언어이고 몸짓이고 정신이었던
집이며 논이며 밭이며 동구나무며 눈물이며 콧물들 어엿하게 닦아낼 나이 되어서야 보이는
이슬에게 비탈에게 잔주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