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차차차 꽃잎들 - 김말화 시집

마루안 2020. 1. 3. 23:32

 

 

 

애지에서 나온 시집은 꼭 살펴 보는 편이다.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은 더욱 유심히 들여다 보게 된다. 이 시집은 김말화의 첫 시집이다. 누구든 그러겠지만 시인에게 첫 시집은 각별하다. 독자인 나도 가능하면 그냥 지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시인이 심혈을 기울여 생산했어도 공감이 안 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안타깝지만 몇 편 읽다 그냥 덮는 시집이 많다. 한가하게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반복해서 읽어보는 인내심이 내게는 없다. 매정하게 지나간다.

가끔 비평을 하는 평론가들은 얼마나 고역일까 생각들 때가 있다. 싫은 사람과 악수해야 하는 정치인처럼 억지로 읽어야 하는 책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독자는 참 편리하다. 맘에 없는 책 외면하기는 라디오 채널 돌릴 만큼 쉽다.

나와 코드가 맞는 시인이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첫 장부터 확 들어오는 시보다 조금씩 빠져 들어 시인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해 반복해서 읽고 싶은 시가 있는데 이 시집이 그랬다. 가볍게 술술 읽히면서도 묵직한 울림이 있다.

낮은 곳을 향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건너편 사람의 누추함까지 껴안고 싶을 심성을 지녔다. 슬픔이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버틸 수 있었을까.

눅눅한 슬픔을 이겨내고 눈물이 스민 베개가 뽀송뽀송해질 때 살고 싶어진다. 시집에 실린 시가 다소 어둡고 슬픈 시가 많지만 영양가 있는 좋은 시로 가득하다. 오랜 기간 단련한 시심이 탄탄함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소소한 일상을 지나치지 않는다.

배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찮은 일상과 속물들을 따뜻하게 품는다. 이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시인에게 혁명적인 서사성까지 바라는 것은 사치다. 정직한 서정성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는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샌 줄 모른다더니 뒤늦게 꽃을 피웠다. 하긴 언젠가는 필 꽃이기는 했다.

내 생각에 앞으로 시집 서너 권은 너끈히 낼 만큼 가슴에 담긴 시심이 풍부하다. 마중물이 필요 없는 옹달샘이다. 영화든 무협지든 감동이 깊을 때 후속편을 기대한다. 마지막 시편에서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가 선명하다. 좋은 시인 하나 기쁘게 가슴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