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잃어버린 계절 - 김시종 시집

마루안 2019. 12. 6. 19:45

 

 

 

김시종 선생은 일본에 살고 있는 시인이다. 보통 재일본 시인이라고 부른다. 이 시인을 알게 된 것은 돌베개에서 나온 <조선과 일본에 살다>를 읽고서다. 왜 책 제목이 한국과 일본에 살다가 아니라 조선과 일본에 살다일까. 책을 읽고서 이해했다.

이상하게 나는 경어체로 된 문장을 잘 읽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떤 문장에 <어제는 날씨가 좋았습니다>가 나오면 금방 질린다. 편지글 아니고서는 장시간 이런 글은 읽기가 참 힘들다. <어제는 날씨가 좋았다> 이 문장과 글자 두 자 늘어났을 뿐인데 그렇다.

아무리 좋은 책도 경어체 문장은 몇 페이지만에 금방 질려서 읽기를 포기하고 만다. 앞으로도 이런 글은 읽지 못할 것이다. 김시종 선생의 자전인 조선과 일본에 살다도 경어체 문장이어서 읽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군데군데 건너뛰었다.

선생의 시집은 그동안 번역이 되지 않아 읽기 힘들었다. 하긴 있었다 해도 그의 자서전을 읽기 전에는 모르는 시인이었을 것이다. 이 시집을 읽기 전에 그의 첫 시집인 <지평선>과 시선집 <경계의 시>를 읽었다. 지평선은 1955년에 나온 시집인데 한국 독자는 오랜 기간 그의 시를 읽을 수 없었다.

김시종 선생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자랐고 광주사범학교 재학중에 해방을 맞았다. 1948년 제주 4.3 항쟁에 참여했다가 검거를 피해 1949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선생은 원로시인 이생진 시인과 동갑이다.

4.3 때 제주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선생이 살아남은 것은 북쪽 원산 출신인 아버지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이다. 선생은 오사카의 조선인 거주지역에 살며 여러 문화 운동과 함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 근 50년 만에 고향 제주 땅을 찾았고 부모님 묘소에서 가슴에 맺혀 있던 50년의 회한을 통곡으로 풀었다. 몇 년 전부터 선생의 시집은 대부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제주에서 자랐지만 선생의 모국어는 일본어고 일본어로 글을 썼다.

선생은 오랜 기간 남쪽도 북쪽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았다. 그가 한국인보다 조선인라는 말에 더 익숙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생은 4.3 에 참여했고 속칭 그는 빨갱이였다. 선생은 두 개의 조국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다.

이 시집은 2010년에 발간된 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그리고 이 시집으로 일본의 문학상인 <타까미 준> 상을 받았다. 오랜 기간 일본 시단에서 주변인으로 머물다가 드디어 대시인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선생이 자주 쓰는 표현에 '시를 살다'라는 말이 있다. 시란 '쓰는 것' 이전에 '산는 것'이다. 시란 시인의 특권적 소유물이 아니다. 모든 이가 '시를 살고' 있다. 시인이란 '쓰는' 방식으로 시를 사는 사람이다. 써진 시는 쓰이지 않은 막대한 시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시를 번역한 이진경 씨의 말이다. 일본글을 아는 한국인과 한국글을 아는 <카게모또 쓰요시> 공동 번역이다. 어차피 김시종의 일본글 맛을 모르기에 일어 원문으로 읽지 않은 이상 번역가의 글재주를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서경식 선생의 글도 한국 독자는 번역본을 읽는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시대의 참 지식인 이진경은 한국과학기술대에서는 본명인 박태호 교수다. 감옥에서 콩밥을 먹고, 어느 날 김시종 선생의 시에 확 꽂혀 각고의 노력으로 이 시집을 번역했다.

시집은 여름, 가을, 겨울, 봄 이렇게 네 개로 구분해서 각 여덟 편씩 실렸다. 일본어 원본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시는 <4월이여, 먼 날이여>와 <봄에 오지 않게 된 것들>이다. 읽을 만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