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슬픔이 오는 방식 - 김말화

마루안 2019. 12. 29. 18:58



슬픔이 오는 방식 - 김말화


목수인 아버지는 나무와 가까웠지만
혼자였던 나는 슬픔과 가까웠다
나무는 슬픔을 알지 못했고
나는 아버지를 외면했다


바깥을 배회하는 나무처럼
그 나무를 배회하는 바람처럼
아버지는 밖으로만 떠돌았다 어쩌다
그 바깥이 안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내가 바깥이 되었다


혼자는 자꾸 눈물 이야기만 하려 해서
저녁마다 울음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나는 나로 놓여있지 않았다
하루가 버거운 후천적 고아였다


웃음이 등 뒤로 흘러내리던 날
아버진 끝내 바깥의 신도가 되었고
내 유년의 나무는 장례되었다


때론 슬픔이 슬픔 안에서도 걸어 나온다는 걸
한참 후에야 할았다
이렇게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저녁이면


*시집, 차차차 꽃잎들, 애지








생활의 발견 - 김말화



생활에서 발견되는 건 언제나 그들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
내 주변을 기억해주고 별 볼일 없는 나의 유일한 안식이자 구원이지만
자주 연락하자고, 마음 주고받자고 떠들고
남는 것도 빼앗긴 것도 없이 밥 한번 먹자는 헛약속이 있을 뿐
누구나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조우하는 것들과 비일상적인 것을 꿈꾸지만
이렇든 저렇든 하루를 닫는 시간에게 물어보면
오늘 하루는 어제 있었던 일이고 내일 일어날 예정된 오늘
인간이 되긴 힘들지만
사람에게서 사람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
참으로 우울하고 지긋지긋하고, 그토록 치졸하고 유치한 순간들이 빼곡하지
그럼에도 다시 찾고 만나고를 반복하는 것은
지독하지만 필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헛헛함, 혼자라는 두려움 탓
생활에서 발견되는 건 언제나
내 마음 같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어디에도 가 닿지 않는 위로이지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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