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보이저 코드 - 김태형

마루안 2019. 12. 21. 22:35

 

 

보이저 코드 - 김태형

- 2010년 4월 22일부터 보이저 2호가 괴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기를 프로그래밍하고 있었다. 해독할 수 없는 코드였다.

 

 

이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어쩌면 희망이 아닐지도 몰라
그 무엇이든 한 점 푸른 먼지가 되도록
너무나 멀리로만 가고 있을 뿐인데
나는 왜 네가 있는 위치를 가슴에 새기고
떠났던 것일까
이제는 내 말을 전송하고 싶어
내가 아니었던 모든 것들을
내가 본 찬란한 어둠을
모두 지워버리기 시작했지
희미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우주에서
누가 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발목이 붉은 햇빛을
둥근 지평선이 건너와 내려앉은 어깨를
그렇게 뒤돌아보았던 거야
검은 구름에 사로잡힌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거야
그 야윈 뺨의 석양으로부터
나는 태어났으니까 그것뿐이니까

 


*시집, 고백이라는 장르, 출판사 장롱

 

 

 

 

 

 

마흔 - 김태형

 

 

진눈깨비가 되었다가 비가 되었다가
결국 다 지난 일이 되어버리듯
지나가는 거라고 생각할 때
덩치 큰 유조차가 씩씩거리며 앞질러간다
유리창에 빗물과 진흙이 가득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쯤에서 끝낼까
한계령으로 넘어갈까
하다가 그만둔다
내리막이 더 가파르다 그쪽은
돌아오기에 너무 멀다
하지만 잊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고작 알량한 것들을 잃을까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그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젯밤 아직 뜨지 못한 채 갇혀 있던 어느 눈동자가
죽은 애벌레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 김태형 시인은 1971년 서울 출생으로 1992년 <현대시세계>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을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고백이라는 장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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