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기 좋은 방은 어느 계절에 있지 - 조미희
늙은 새들
방이 적다고 운다
겨울,
싹트는 발목이 그곳에서 기다린다
자세를 바꾸면 봄으로 이사 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바람이 창을 그려
맨발을 붙인다
다음 장에서 만날 가능성에 기대 본다
멀리서 날아오는 새의 투정을 찢어 호주머니에 숨긴다
의심 없는 온도를 꽉 쥔다
얼어 죽은 고양이와 비를 맞고 죽은 목련꽃 중
어느 쪽이 더 마음 아프지
문상객으로 거리에 서 있다
달이 천 개의 현을 뜯는다
불길한 구름 떼가 몰려오고 달 귀퉁이의 올이 풀린다
달이 줄어든다
오물 같은 침이 뚝뚝 떨어진다
무엇을 삼키려 했던 걸까
빙판길의 이삿짐 트럭
하나, 둘, 셋
잠자지 못하는 시계들의 야반도주
녹지 않은 주소들이 실뭉치에 걸려 자꾸 넘어지는 사이
달이 먹어 치운 집들과
집이 먹어 치운 이삿짐 트럭
쉬기 좋은 방으로 가기 위해
몇 번이고 발목을 전지한다
*시집,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 문학수첩
카운트다운 - 조미희
가난한 자의 투지는
하루를 줄이는 것
달력은 한숨의 공원
파란 의자 빨간 의자에 걸터앉으면
젊음은 빠르게 흐르고 지급해야 할 것은
더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속은 건지 속아 준 건지
불 속에 장작을 던지듯 젊음을 던진다
징검다리처럼 의자가 기다린다
의자를 소비하면 공원은 없어질까?
검은 의자는 페달을 굴려야 하고
한가로이 날갯짓하는 새도 노동을 하는 중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도, 개미도
꿈틀거리는 것들은 다 밥벌이를 한다
그래서 노동이 아름답다 했나
개가 주인과 산책 나와
걷고 꼬리 치고 공을 받아 낸다
"메리. 잘 했어."
주인은 머리를 쓰다듬고 개의 혀는 침으로 범람한다
개는 오늘 하루를 잘 견딘 것이다
무사히 늙음을 향해서
하나의 한숨을 날려 보내며
창문을 닫는다
단지 하루를 건넜다
내 머리를 내가 쓰다듬듯
쓸어 넘긴다
# 조미희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2015년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자칭 씨의 오지 입문기>가 첫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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