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나무 - 김영언
설 쇠고
다들 떠난 자리
뒷산 산소 옆 늙은 소나무 한 그루
보고 싶었던 자식들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떠나버린
재 너머를 향해 기울어진 채
그리움을 발돋움하고서
세월아, 세월아,
돌아보지 않는 바람만
행여나, 쏴쏴 흔들고 있었다
언뜻 의무처럼 왔던 이들
어둠 밖으로 의무처럼 떠나보낸 뒤
고단한 그림자만이 홀로 남아
말없이 눈물도 없이
불빛 힘없이 사그라지던 대문간에 서 있었다
*시집, 집 없는 시대의 자화상, 작은숲출판사
오두막에서 연기를 피우다 - 김영언
세상 한 귀퉁이
액자처럼 걸려 있는 외딴 오두막에 들어앉아
풍경 밖으로 하릴없이
닿을 곳 없는 음성부호 같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잡다한 생각들을 똑똑 꺾어 불더미 속에 던져 넣으며
주저 없이 하늘을 치받던 키 높은 낙엽송들이
도막도막 욕망을 꺾고
숲 속으로 몸을 낮추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강난 나무들의 정령이 허물을 벗듯 재를 떨구고
더 큰 풍경으로 너울너울 승천할 준비를 한다
더러는 쉽사리 숲을 떠나지 못하고
층층나무 여린 손마디를 감싸쥐고 소매를 팔락거린다
연기, 연기가 풍경 위에 평화를 덧칠하며
미처 마음을 비우지 못한 가지 끝 늦바랜 단풍을 도닥거려
훈훈하게 감싸안고 어디론가 떠나는 어스름 풍경을
계절을 넘어가던 저녁 새 몇 마리 쪼아 물고
두어 모금 바삭바삭 마른 영혼 같은 울음 밖으로 떠나간다
마음이 자꾸만 어설피 따라 나서려고 한다
풍경 밖으로 떠나며 풍경을 그려내는
저 아름다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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