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마침표 - 김성장

마루안 2019. 12. 19. 19:11



마침표 - 김성장



시장통 끝에 액자 가게가 있다
이혼한 딸 떡볶이집 개업 선물을 사기 위해 할머니가 그림을 보고 있다


호랑이 두 마리가 그려진 그림과
호랑이 한 마리가 그려진 작품을 비교하시는 중


사고자 하는 그림은 호랑이 두 마리가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매겨진 가격표를 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호랑이 두 마리보다 비싸다


고개를 기울이며 할머니가 묻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여


지나던 사람들도 수군대며 다가섰다
화가가 대답한다
이건 한 마리지만 좀 큰 놈입니다


할머니는 고객를 끄덕인다
그려 좀 크구만 그랴


사람들이 흩어지고
할머니의 말이 거리를 평화롭게 하였다



*시집,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 걷는사람








끈 - 김성장



삶이 쓸쓸한 시절에 한 번씩 짐을 정리한다


아직은 버릴 수 없는 것들과
이제는 버려야 할 것들을 나누게 되는데
계속 살아남은 것은 빈 봉투들이다
그리고 저 노끈들


한때는 내 손끝에서 흘러나와
이웃집 담장을 넘고
잠든 여인의 가랑이 사이로 흘러들더니
한때는 내 눈 속에 들어와 깊은 병이 되더니
어느 봄날 희미한 삶에 밑줄을 그으며 붉어지더니
책을 묶고, 옷을 묶고, 쓸쓸함을 묶고


그러고는 내 시신을 묶어 빈 봉투에 넣어야 할
잘 묶이지 않는 내 입을 향하여 천천히 흘러내리는
노끈의 시간


겨드랑이가 쓸쓸한 시절에 한 번씩 끈이 꿈틀거린다






# 김성장 시인은 1988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로 다른 두 자리>가 있다. 이번 시집은 등단 2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이다. 전직 국어교사이자 서예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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