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가끔은 범람 - 안태현

마루안 2019. 12. 16. 19:58



가끔은 범람 - 안태현

-사랑의 물질성에 관한 태도.4



엎드려서 문득 십 년 후가 보일 때가 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이는 그때


수척해진 빛을 쬐고 있으면

미완의 새처럼 잊어버린 날갯짓이 생각나기도 할

그때

넘쳐나는 것이 있긴 있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면

물병에 물을 담는 일이

당신과 나의 내세를 채우는 일인 양 흐뭇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넘쳐흐르기도 했다


바스러지는 몸에서  악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닦는다

그것은 눈부신 음색을 찾아

미래의 시간을 짚어보는 일


사랑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결이라 쓰고 싶지만

일천 이십여 개의 탄흔 같은

비무장의 몸에서

흘러나온 흉몽들이 더 많았으리라


타인들은 쏟아지고

세상은 감염병을 앓는 듯이 모든 것을 쓸고 가며

폐허를 닮아간다


내가 닿았던 당신의 한숨과 노래들이

끓어 넘칠 때 

그리하여 생의 한구석이 빛나기도 할 때



*시집,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시로여는세상








변곡점 - 안태현

-사랑의 물질성에 관한 태도.5



내 사랑도

당신 몸의 화인(火印)도 늘 제자리


애초에 나는 불완전한 생을 받아든 사람이므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으나

우리의 삶은 항상 커브


낮 동안 끌고 다닌 몸으로 뼈가 가벼운 새처럼 하늘의 가장자리를 말갛게 닦으면

뜨거운 생살이 만져진다


미안하다

지난봄의 소소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 내 귀에서 반성의 목소리 한번 들은 적 없으니

이게 무슨 현상일까

먼 곳으로부터 돌아온 나는 아직도 무관심의 요철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당신의 불평처럼 듣는 빗방울


펄펄 끓어도 병이 되지 못하고 오래 버텼으나 단 한 번의 치유도 되지 못한 숱한 밤을 앞에 두고 있으면

사람의 일이란 미궁

때를 기다리고 때를 알아야 하는 것


차례차례 열리는 문으로부터 삶은 여전히 덜컹거리고 기억마저 흐려져서

지울 수 없는 후회로 남는다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아침이 오고 석양이 눈부시게 비출 때 구름의 행간에서 읽는

당신과 나의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