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흰 나비 도로를 가로지르고 - 노태맹

마루안 2019. 12. 1. 18:28



흰 나비 도로를 가로지르고 - 노태맹



지하 주차장에 가득 찬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에
차 문을 열다 잠시 감전된 듯 멈추다.


성서 공단을 지나고 하수처리장을 돌아,
작은 메타세쿼이아 숲가에 차를 세우고
부정맥으로 일렁거리는 내 안의 강물들을 진정시켜 보다.


꽃 핀 자귀나무 위 공기들이
붉은 부채꼴 모양으로 둥글게 말렸다 닫히고
새떼들의 울음을 덮는 환한 나무그늘.


혹은 천천히 도로를 가로지르는 흰 나비 한 마리...


하지만 우리 생은 이런 아름다운 내러티브가 아니지.
지나온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붉은 구름들이 도로를 따라 가고


이 길 위에서의 내 전망이란
길바닥 붉은 살덩이가 눌러붙어 있는 계급론
나비 한 마리를 허공으로 날려버리는 공황론 같은 것.


술이 다 깰 때까지 참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생이란 내 차가 지나간 그 길 위
다시 천,천,히, 도로를 가로지르는
한 마리 흰 나비 같은 것일 것인가, 어쩔 것인가.



*시집, 벽암록을 불태우다, 삶창








붉은 사막을 지나온 낙타처럼 - 노태맹



그 때 모든 붉은 꽃 핀 곳도
우리의 사막이었다.


사랑이여, 왜 모든 기억은 눈물이며
왜 모든 아픔은 호수처럼 그리 오래 눈 뜨고 있었는지,
이 모래의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보속(補贖)을 약속받고 싶었었다.


노을이여, 이제 나에게 얼마만큼의 붉음이 허락되겠는가.


돌아보라 이미 서른 개의 사막을 지나왔다.
지평선 다 뜯어먹고 고개 돌려 제 등을 바라보는 낙타처럼
무릎 끓고 서로를 붉게 뒤돌아보느니
이제 얼마만큼 나를 더 안아주는 것이 허락되겠는가.
왜 모든 시간은 주름져 있고
왜 모든 기억은 맛있는 빵처럼 부풀어져 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빛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보속을 약속받을 수 있지 않겠는지.


노을이여, 이제 나에게 얼마만큼의 붉음이 허락되겠는가.


이미 죽은 이들은 사막을 지나 별이 되었다.
숲이 길어올린 바람의 길을 따라
새떼들이 하늘로 물고 올라가는 둥근 종소리처럼
여기 살아남은 우리 서로의 어깨를 껴안느니
왜 모든 시간은 주름져 있고
왜 모든 꽃들은 그 시간의 주름을 따라 피어 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빛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용서받을 수 있지 않겠는지.


가자, 이제 모든 사막은 우리의 꽃 핀 곳이려니
오라, 서른 개의 사막을 지나온 시원한 물길처럼
그렇게, 붉은 사막을 지나온 낙타처럼 그렇게 우리.






# 이 사람 시는 다소 어렵다. 시를 읽다 잠시만 삐끗해도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하긴 이것도 시인의 개성인 것을,, 시집 말미에 실린 시인의 산문 <벽암록을 읽다>에서 몇 구절 옮긴다. 시인에게도 독자에게도 위로가 되는 글이다. 안도를 위한 위로다.



9-5.

시는 소통이 아니고, '드러냄'도 아니고, 오직 '드러내어 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시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나의 의도는 형식적 틀만을 유지할 뿐이다.


9-5-2.

그러니 내 시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소통, 그런 내 몫이 아니다.


10-6-1.

그렇다. 시는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다.


10-7.
내 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묻지 마라. 내 시는 불덩어리이거나 다 타버린 흰 재다. 소통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그저 그 불덩어리나 흰 재를 가슴에 오래 안고 있어주면 좋겠다. 나는 이미 벽암록을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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