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들의 계획 - 안시아

마루안 2019. 11. 29. 18:58



그들의 계획 - 안시아



우리는 왜 죽고 싶은 거지?


커튼을 젖힌 채 계획은 수정되었다
하필 지금 눈이 내릴 게 뭐냐고
알약들을 하룻밤만 더 봉해두기로 했다
함께 버릴 수 없거나 버리고 싶은 것들 때문에
마주 보고 있는 거라고
차가운 속눈썹에서 눈발이 사라지기도 했다
뉴스 속 사내가 생각나
죽어버릴 거야, 13층 아파트에서 소릴 질러댔지
섬처럼 떠오른 채 거슬러온 중력,
온몸으로 길을 내 육지에 닿겠다 막무가내였지
목을 매거나 떨어지거나
모든 최후는 심장이 내는 용기라는 거
그들은 여관에서 밤새
공평하게 죽음을 이등분했다
추락하는 어느 모서리 너머
스키드 자국이 단숨에 굉음을 긋는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난다고 생각해?



*시집, 수상한 꽃, 랜덤하우스








바람의 이사 - 안시아



수천 수만 번 바람을 생각했다
새벽녘 트럭에 짐들이 실리고
어딘가 떨어져 나온 단추가 밟힌다
장판에 굳은 매니큐어 자국도
사시사철 발그레한 액자 속 들꽃이었다
눈을 감으면 더 솔깃했고
최대한 가볍게 그 곁을 지나갔다
남겨두고 온 것보다 기실,
따라나선 짐들이 측은했다
바람의 이동처럼 몸뚱어리가 전부였으면
나는 과장된 이미지에 불과했다
콜록콜록 기침을 빨아들이던 흡연이었다
물결 하나 양보하고 죽은 친구의
빈 호주머니에 인 보푸라기였다
온전히 짐처럼 부려놓는 바람,
망각이었고 불현듯 노랫말이었다
그 틈에서 추억처럼 먼지가 인다






# 안시아 시인은 1974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여대,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상한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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