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대 어느 계단쯤에서 - 부정일

마루안 2019. 12. 1. 18:57

 

 

그대 어느 계단쯤에서 - 부정일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단이 놓여있다 치자
그대, 갈 길이 먼 양
어느 계단쯤에서 쉬고 있는지
스무 계단 옆길에 핀 꽃이 예뻐라
서른 계단 옆 골목에 주점도 많더라

꽃밭, 주막 다 들러 사십 계단 오르니
휘청, 약간은 숨이 차더라
뒤돌아보며 한 번쯤
앞에 간 자 뒷모습 보며
오십 계단 오르니 바람이 불더라

 

멀리
하얗게 출렁이는 억새 들녘 아스라이
그 너머 무엇이 있는지
어쩌면 붉은 노을 함께
그대,
그 너머에서 쉬고 있는지

 

 

*시집, 허공에 투망하다, 한그루

 

 

 

 

 

 

이순의 길목 - 부정일

 

 

딸아이와 아들을 아내가 키웠다, 나는 엎에 있었을 뿐

분명,

선생님이 부르면 내가 갔었는데 앨범 속에나 색 바랜 흔적 있을까

다 커버린 애들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은 흔적들을 가두어 버렸다

망각 속에는 가족을 끔찍이 했던 사랑, 눈물, 희생

아내의 노력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마음까지 들어있으리라

삼십을 넘긴 아이들

집착을 인정하지 않는 아내.

부모님 사별하여 우리끼리 살아왔듯 애들은 그들의 삶이 있을 터

왜 모르는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귀갓길

내일 아침 피하고픈 잔소리만 뇌리를 스친다

서른다섯 큰 애가 시집을 간다 우리 살아왔듯

딸애 역시 살아갈 것이다

부모님 생전 틈틈이 선물 들고 찾았듯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당신이여 그것이면 족하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정녕 모르겠는가

자식을 언제나 어리다고 보는 당신이여

동의하지 못하는 나의 생각은

이 밤 또 술에 취해

헤매게 될 것이다

 

 

 

 

# 부정일 시인은 1954년 제주 출생으로 한국방송대를 졸업했다. 201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한라산문학회 동인이다. 메밀촌장, 독채민박, 폭낭아래돌집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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