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를 생각함 - 김창균
바람도 사랑의 기억도 귀뚜라미 울음도 다 기울어져 있다.
달빛을 맞으며 주고받던 말도
한쪽 무게를 이기지 못해 번쩍 들리고
너에개 건네던 말들도 기운다. 여기서는
백년이라는 말도 약속도 西로 가는 달도
바람 한 점 얹힐 때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알굴이 파래진다.
며칠 전 죽은 친구의 운세를
오늘 날짜 일간신문에서 찾아 읽으며
"65년 생 어려운 일을 돌파할 수 있다'고 쓰인
문장을 반대편 시소에 앉혀본다.
한번 기울면 다시는 다시는
내 쪽으로 기울어 오지 않는 연민의 몸이여.
이렇게 차가운 달이 뜨는 밤엔
나보다 더 무거운 것들이 들어 올린 내 몸은 허공에 있고
반대편 시소엔 불길한 주술이 무수히
앉혔다 내린다.
*시집,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문학의전당
북극, 초야(初夜) - 김창균
잠시, 환영(幻影)이었던가
문을 열면 구월의 벌판처럼 메밀꽃들이 환하게 쏟아졌다
너에게 닿고 너로부터 떠나는 길은 눈바람 섞어 치는 외길
갸끔 길은 자신을 구부려 겸손하게 몸을 뒤척이고
나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속살 감춘 그녀의 가장 은밀한 부위에 숨결을 얹어본다
빙산의 일각만이 닿는 검은 해변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뜨겁게 해변을 건너뛰는 새여
저 뜨거운 해변을 건너뛰려고
새들은 얼마나 처절하게 경쾌해져야 하는가
거기, 그 앞에서 발자국 기울여 몸을 엎지른 채
내 생의 가장 뜨거운 질문에 한 발 늦게 도착하고야 마는
나는
지분거리는 눈발 털어내며
흰 분칠한 초야의 신부 같은 당신의 얼굴에
절실했던 말들을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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