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잠 못 드는 밤 - 김사이

마루안 2019. 10. 27. 19:02



잠 못 드는 밤 - 김사이



발붙일 데 없는 이들이 바람으로 떠돌아
수천번 날갯짓하며 날아도 둥지를 틀 정처가 없는


구인구직시장 울타리에 수많은 얼굴이 걸렸다
국산 수입산 층층이 탑으로 쌓여가는 검은 망부석들
먹고 자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아가는 일이
어째서 이리도 비싸야만 하는지


비릿하게 씹히는 두려움이 발길을 잡는다
네 손을 잡아도 불안하고 내 손을 잡지 않은 너도 불안하여
구덩이를 파서 둥그렇게 구부린 등으로
사람의 시간이 멈추었다


통증이 마비되어가는 사이 욕망은 견고해져서
지구 밖 별들을 호시탐탐 넘어다보며
생식기도 심장도 사라진 자본형 인간으로 진화 중


그리운 몸과 반항하던 추억과 애인 같은 언어를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바치고 나니
우아한 시대에 그림자가 되었다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창비








보고 싶구나 - 김사이



늦은 밤 불쑥 울린 짧은 문자
보고 싶구나
오십 줄에 들어선 오래된 친구
한참을 들여다본다
가만가만 글자들을 따라 읽는다
글자마다 지독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한 시절 뜨거웠던 시간이 깨어났을까
여백에 고단함이 배었다
너무 외로워서 119에 수백번 허위신고했다던
칠순 노인의 뉴스가 스쳐가며
불현듯 밤잠 설치는 시골 노모가 눈에 맺힌다
더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늙는다는 것 늙었다는 것
몸도 마음도 다 내주고 아무것도 없는
삼류들에게 추억은 왕년의 젊음은
쓸쓸함을 더하는 독주
그저 독주를 들이켜며 시들어가는 현실은
도대체 예의가 없다
나는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못한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파 망에 담긴 양파 - 박일환  (0) 2019.10.28
발원지 - 서광일  (0) 2019.10.27
바람이 보내는 경배 - 우대식  (0) 2019.10.27
단풍 드는 법 - 김남권​  (0) 2019.10.27
별빛 한 짐 - 이원규  (0) 201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