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바닷가 집의 고해성사 - 황학주

마루안 2019. 10. 18. 21:51



바닷가 집의 고해성사 - 황학주



바닷가 집에 날벌레가 찾아오는 맹숭맹숭한 밤
떡갈잎 아래 몸져누운 당신을 향해
등잔은 기러기의 목선을 빌려다주고
그 우묵한 곡선에 동공을 괴어놓았다


창문을 여니 달빛은 누런 반지 빛깔이고
갯것의 눈동자 위를 삼보일배로 걸어간
바느질 자국,
그 걸음 쫓으면 쓰르르쓰르르
해변에 어깨가 묻힌 사람의 한 단면이 밀리고 떤다


알려지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어 어떤 과거는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 같지 않은 눈코입이 투미하게 들었다


침상에서 달그락대며
등잔은 곧 관자놀이 누르고 나오는 말을 꺼버릴 거면서
심지를 세우고 탄다
늦으려나 묻는 듯이


해 떨어진 지 오래인
우수리로 실리는 물살 조심조심 베고 자는 당신을 보면
친정이었으면, 누군가의 침상은 해변에서 좀 떨어졌으면 좋겠다


바다 위 진흙 달이 머리 위에서 터지면
길이 요원하다
길 바깥에선 바깥 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게 답니까, 라고 물어오는
고해성사 기다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시집, 사랑은 살려달라고 하는 일 아니겠나, 문학동네








잠과 잠 사이 - 황학주



밤에 자다 중간에 깬다
따지자면 일생 동안 두 순간에 이가 갈리고 그리고 두 순간을 물었다
혼자 자다 깨어나는 중간과
함께 자다 깨어나는 중간에 홀린 듯,


중간을 시리게 쓸어안는 잠과 잠 사이
문득 부르는 내 이름은 마치 네 머리맡에 물 대접처럼 놓인 적 있는 말투다






# 가을은 어디쯤 왔는가. 이미 설악산 단풍은 절정에 달했는데 나는 이제서야 가을을 실감한다. 요즘 새벽이면 잠이 자주 깬다. 체질에 딱 맞아 가을을 앓는 중이다. 올 가을도 어김없이 왔는가 싶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겨우내 견딜 체력을 위해 가을이면 살집을 키운다는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뒤척이는가. 올 가을도 곧 떠날 채비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