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고봉밥 - 이성배

마루안 2019. 10. 16. 23:10

 

 

고봉밥 - 이성배

 

 

바싹 마른 참깨밭 고랑에

자그락자그락.

 

깔개 깔고 땅바닥에 앉은 순자네 모친, 흙덩이 같은 손으로

북을 준다.

 

헛간 한쪽에 잘 모셔 두었을 스뎅 그릇 하나가

연장의 전부.

 

처음에는 뜨거운 국을 담았으리라, 내 식구 남 식구 가리지 않고

타는 목 축이라고 냉수 담아 건넸을 것이다.

 

밤새 시름시름 앓던 자식 머리맡 지키며 핏덩이 가슴에 묻은

순자네 모친.

 

밭고랑에 덩그러니 앉아 가뭄에 고꾸라진 참깨 모 깨나라고

바그락바그락.

 

가마솥 밑까지 긁어

어린 것들에게 고봉밥을 올린다.

 

 

*시집/ 희망 수리 중/ 고두미

 

 

 

 

 

 

정크 아트 - 이성배

 

 

근처 폐연초제조창으로 공예비엔날레 구경을 갔다. 예술은 니코틴처럼 벽면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고 어두침침한 전시실을 나오자 가을 하늘이 예술. 은유와 상징에서는 마른 담뱃잎 냄새가 났다. 야외 잔디광장 붉은 색 롯데리아 푸드 트럭, 간결한 직설이 침샘을 자극했다. 나란히 놓인 파란색, 노란색, 회색 분리수거 쓰레기통을 작품으로 착각했다. 국화꽃 무더기로 달려들 듯 꿀벌들이 플라스틱 꽃 속으로 드나들었으므로 예술 애호가 중 상위 1%는 햄버거맛 꿀을 먹을 수 있으리라. 예술가들이 배고픈 것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먹고 사는데 너무 오래 정신 팔았다.

 

오늘은 그만 날자, 배고프니 삶이 건조해진다.

 

 

 

 

# 이성배 시인은 1973년 충북 괴산 출생으로 충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9년 경찰관이 되어 현재 음성의 한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는 경찰이다. <희망 수리 중>이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