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 박미란
너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돌아가고 싶었다
숲은 푸르렀고
푸르름이 더하여 검붉었다
한껏 검붉었다가 어두워지면
털이 많은 짐승이 먼 산기슭에서 잠들었다
잠잠해야지
그래야지
어쩌면 그런 날이 안 올지 몰라
숲의 술렁거림을 굽어보면
후회는
어디 아픈 듯
뒤늦게 따라왔다
조금 따라오다가
어느 산모퉁이로 접어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마다 눈뜨고 감는 일처럼
집으로 갈 수 없는 후회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시집,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문학과지성
외삼촌 - 박미란
그는 소경이었다
외숙모 보낸 후
혼자 닭 키우고 알 거두며
눈 어두운 와중에도 사람들의 아픈 곳을 만져주었다
그가 문고리 잡고 나와
처음 내 손을 잡았던 날의 기억이 있다
너는 단단하면서 여리구나
조급해하지 말고 쉽게 마음을 맺지 말고 치우치지 말고 살아라
그는 눈 감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한
불안하고 두려운 앞날까지도
그 걸음걸이가 하도 밝아 잠시 눈을 의심하며
닭들이 홰치는 소리를 따라
지팡이 짚고 닭 모이 주러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박미란 시인은 강원도 태백 황지 출생으로 계명대 간호학과 동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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