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절규 한 척을 띄워 보낸다 - 정선

마루안 2019. 10. 9. 19:01



절규 한 척을 띄워 보낸다 - 정선



바람이 책임질 수 있는 밤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문지방을 긁어 먹어야 영감이 떠오르는 어느 작가처럼
절규를 품어야 밤을 건널 수 있다
당신이 아타카사막을 횡단할 때
해골 위에 모래시계를 얹고
나는 들풀로 지은 게르에서 홀로 촛불을 밝히고 있다
남녘으로 한층 길어진 그리움의 목을 껴안자
풍덩, 촛불 속으로 절규가 뛰어든다
고독은 열병조차 석고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가 뛰어나지
방가지똥 씨앗 하나도
제 깜냥껏 공중을 비행할 권리가 있고
내 뼈가 기억하는 건
적막을 밟고 가는 바람, 그 바람의 마른 문장들
그 문장들의 밤에 소금 한 조각 기타를 띄운 당신
문득 그대 올 거라는 믿음이
해맞이언덕에서 수년째 출렁거리고 있지만
온몸의 뼈들은 석회질로 스러지고
믿음도 때때로 지겹고 지치는지라
나를 키운 은둔의 사막에
절규 한 척을 띄어 보낸다
깎이고 문드러지고
역삼각형 스톤트리로 되똑 선 절규
그대 혹시
한 척의 절규를 타고 붉은 몸으로 내게 온다면
맨발로 뛰어가 맞을 텐데
횡허케, 게르 밖엔 기타가 당도해
긴 절규를 울고
염원하던 절규 속에서 나는 황홀히 익사하고



*시집,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문학수첩








우울백서 - 정선



나는 터져 나오는 감정을 희석하느라 반평생을 낭비했어
우울은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스러지지 않아
떠날 때라는 걸 몸이 먼저 알지
이곳에서 나의 태양은 사각 빌딩에 걸려 날마다 굴러떨어지지
빌딩은 절망이야


곰팡내 나는 이름을 벗어 놓고
붉은 우울을 읽으러 지중해로 갈 거야
동화 속 카르카손을 돌아
검은 창이 무구로 빛나 더 슬픈
거기, 벌레 먹은 낙엽 같은 방종도 찬란한 
삐거덕거리는 뼈도 일으켜 세운다는 콜리우르로 갈 거야


섞지 않을래 검은 창을 지중해로 칠할래 창문을 힘껏 젖힐래 태양을 들일래 오렌지빛 고독을 심을래 와인으로 촛불을 켤래 눈을 찌르는 빛깔로 고귀하게 눈멀래
어쩌면... 인간은 위로가 되지 않아 


난 변덕스러운 파도보단 늡늡한 태양을 업을래
못다 읽은 원시의 태양들이 뒹구는 해변에서 
수많은 기호들과도 생까고 호사스런 돼지가 될래 
해바라기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오래도록 우울로 이글거릴래
그러다가 방종한 태양과 눈 맞아 불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