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전향 - 김요아킴

마루안 2019. 10. 4. 19:47



전향 - 김요아킴



타석에서 보는 세상
팀을 위하여
좌로 전향을 시도했다


가끔씩 매섭게 후려치는 좌타자 말고는
편안하게 지킬 수 있는
실패한 공이나
더딘 땅볼을 낚는 것만으로도
기득권을 가질 수 있는
그 자릴 놓아 두고, 핫코너로
전향하였다


이어지는 우타자들의 독설 같은 거친 타구
상대방을 비웃는 듯한 교묘한 코스
불친절한 공의 바운드
한 몸으로 막기엔 어쩔 수 없는
불투명한 안경알 너머의 공세


2루수와 3루수의 자리
이데올로기의 차이만큼, 그 댓가는
잔인했다



*시집, 왼손잡이 투수, 황금알








인생 - 김요아킴
- 홈베이스에 서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의 타석에서
지인의 아비를 마지막으로
떠나 보낸 그 무게를 생각한다
한 떨기 잎이 찬바람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순간,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며
상가의 불빛은 쓴 소주를 들이켰다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으려는 자의
막막한 긴장은
예측할 수 없는 후일담으로 취해 갔고
온돌의 훈기로 띄엄띄엄 전해지는
몇 마디 말과
숨을 삼킨 차가운 침묵과의 거리는
불과 공 한 개의 차이,
상여의 꽃술처럼 붉은 실밥이
늘 아웃을 향해 직구로 내리꽂히는
오금에 다시 한 번 힘을 준 타석,
고스란히 화구(火口)로 빨려들어가는
가벼워진 한 생이 보일 뿐이다






# 김요아킴 시인은 1969년 경남 마산 출생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2003년 계간 <시의나라>와 2010년 계간 <문학청춘>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가야산 호랑이>, <어느 시낭송>, <왼손잡이 투수>, <행복한 목욕탕>, <그녀의 시모노세끼항>이 있다. 이름이 다소 특이한데 본명은 김재홍이다. 현재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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