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시월, 봄 - 강회진

마루안 2019. 10. 7. 21:49



시월, 봄 - 강회진



지구상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
칠 년 치 비가 열 시간 넘게 쏟아졌다
세 번째 비 그치자 시월, 사막에
드디어, 결국, 펼쳐진 봄


모래 속 숨 죽이고 있던
작은 꽃씨들 비의 전언에 투두둑, 답한다
연분홍 꽃들은 어둡고 막막한 기다림의 결과
씨엇들의 울음 껍질


꽃으로 흐르는 사막의 시간 속
화악, 지독한 반발
숨어 있던 독한 마음들 풍경을 바꾼다
때로는 아름다움의 눈을 찌른다


끝이 보이는 불길함에도 주저 없이 손 내밀던 날들
어쩌면 그것은 무모한 간절함의 다른 이름
순식간에 핀 꽃들, 순식간에 지고
사막은 처음으로 돌아가 모른 척 기다린다
언젠가 드디어, 결국, 올 봄



*시집, <반하다, 홀딱>, 출판사 장롱








이방인 - 강회진



거짓인 줄 알면서 견뎠다
책장에서 늙어가는 책
한 곳에서 늙어가는 돌
한 곳에서 기다리는 나
내가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니
망할 놈의 사주쟁이
초록이 울컥, 오동나무
꽃들 알몸으로 춤추다 쓰러진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적막의 숲,
손바닥으로 쓸어내리자
사라지는 풍경들
처음부터 없었던 풍경들
지켜봐라, 나는 더 이상
착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가능한 빌어먹을 성질로
나의 생을 저주할 것이다
좋은 시절은 갔으나
찬란한 시절이 올 것이므로
이제 나는 내 생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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