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빨간 점퍼를 입은 블랙아웃 - 김재홍

마루안 2019. 10. 1. 19:50



빨간 점퍼를 입은 블랙아웃 - 김재홍



빵! 하고 날아간 탄환은
섬광을 일으키며 떠올라 한 순간
숨도 쉬지 못하고 내리꽂혔다


안경이 날아가자 도로와 건물은
비틀리고 찌그러지고 흘러내리고
체온과 상온 사이 평균점을 향해
구부러진 팔과 늘어진 다리와 접힌 허리는
앵글 안에 고정되어 있었다


외투 속에 머리 파묻은 사람들
검은 승용차와 푸른 트럭과 버스가 내달리는,


가볍게 날아올라 순간이 영원인 듯
중력 법칙 넘어 블랙아웃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의 빵!



*시집, <주름, 펼치는>, 문학수첩








거대한 눈 - 김재홍



한 사람의 영혼이 육신을 떠났다는
소식은 차갑고 날선 눈과 함께 왔다


열차들 자동차들 자전거들
움직이는 굴러가는 달려가는
사람들과 사람들의 사람들이 뒤엉킨
비켜 가는 스쳐 가는 엇갈리는 좌절하는
무수한 술어(述語)들과 함께 왔다


육신이 분해되는 하강의 길 혹은
유기체가 복합체로 전이되는 연속의 길
세계와 세계의 틈으로 스며드는 영혼의 운동
혹은 우연에서 필연으로 상승하는 영원의 길


가슴을 때리는 옭죄는 숨길 가로막는
영혼과 육신의 분리와 슬픔과 절망 앞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무수한 구멍들
구겨지고 접히고 되접히고 펼쳐지는 순간들


한 움큼의 뼛가루를 떠올리며
그가 아닌 그는 그녀가 아닌 그녀와
한겨울 축축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육신을 떠난 한 사람의 영혼은
휘날리는 흩날리는 거대한 눈이 되어 왔다






시인의 말


나는 진실했는가


내가 보고 들은 것
내가 겪은 것에 나는
나를 바쳤는가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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