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유행가는 가을처럼

마루안 2019. 9. 23. 19:55

 

언젠가부터 뽕짝이 좋아졌다. 언젠가부터였다기보다 애초에 뽕짝 선율은 내 몸에 잠복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 누이와 장애인 형도 뽕짝을 잘 불렀다. 주로 형은 배호와 나훈아 노래를 누이는 이미자와 심수봉 노래였다.

 

내게 유행가는 곧 뽕짝이다. 그것도 슬픔이 뚝뚝 묻어나는 애조띤 선율이어야 한다. 슬픈 노래만이 내겐 진정한 유행가다. 그래서 김수희의 남행 열차보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가 훨씬 내 정서와 맞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대부분 노래방에서 분위기 망치기 딱 좋은 노래라고 할까. 그런 유행가를 문장으로 내 가슴에 심어준 책이 있다. 평생을 한국일보에서 일했던 김성우 선생의 <돌아가는 배>다.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도 그가 내린 유행가의 정의는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있다.

 

*내 첫 문화인 유행가는 내 인생의 곡조가 되었다. 내 인생의 테마 뮤직이 유행가다. 평생 동안 내내 유행가의 가락은 나의 보조를 반주해 주었다. 나는 세상을 트로트조로 살아왔다. 나의 행동에도 사고에도 그리고 나의 다른 문화에도 유행가적 가락이 들어 있다.

(.....)

어차피 인생이란 유행가의 한 소절인것, 그다지 심각한 것도 그다지 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하찮은 유행가의 한 소절에도 인생이 다 들어 있는 것이다. *김성우 책, 돌아가는 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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