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망가진다는 것 - 신준수

마루안 2019. 9. 21. 22:42



망가진다는 것 - 신준수



다 새것이었던 것, 서로 눈여겨보았던 것들이

한 번은 만나는 일생의 중간쯤

은행 앞 올 풀린 청바지에 비니를 눌러쓴 사내

꺾이고 휘어진 우신의 잔뼈를 매만지고 있다

눌렀다 폈다

햇살에 눌린 소리들이 연실 착하게 굽실거린다

간간이 바람이 다녀간다


바람은 접혔다 펴지고,


돌아보면 모두 힘겹게 붙어 있거나 곧 떨어질 나뭇잎 같은 것들

뒤척이던 햇살 슬며시 물러나고

휘어진 척추 꼿꼿하게 일어선다

푸드덕푸드덕 만국기처럼 펼쳐진다

웅크렸던 사내의 정맥이 펄떡이고

잡목 어우러진 여름이 푸른 허파로 숨을 쉰다


다리 골절로 정형외과 찾았다

어긋난 뼈를 바로 잡고

각설탕처럼 조각난 경골에 철심을 박았다

펼 수도 접을 수도 없던 발목,

어느 길은 접고

어느 길은 펼쳐 수선하듯 걸음을 만들 것이고


몇 차례 묶였던 물기들이 비로 내리는 은행 앞

뒤늦게 돋아나는 푸른 색실들



*시집, 매운방, 애지출판








마중 - 신준수



추석이었다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나는

시내 터미널까지 마중 나온 어머니를

대합실에서 만났다

돈은커녕 돈 넣을 수중도 없었다

매점 아낙이 돈뭉치를 바르게 펴고

그걸 천천히 세고 있었다

난 외면하고

엄마는 오래 바라보았다


몇 년 후

얼마간의 목돈을 모으고

일부러 헝클어트려서 엄마에게 드렸다

좀 세어달라고

아마도 추석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돈 몇 푼 넣을 수중이 생긴

들뜨는 추석이었다






# 신준수 시인은 강원도 영월 출생으로 201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매운방>이 첫 시집이다. 여성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