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사춘기 - 오창렬

마루안 2019. 9. 18. 22:19



사춘기 - 오창렬



배롱나무 한 쪽이 막 붉어질 때
온 가지에 피어 한 그루가 한 송이 커다란 꽃일 때보다 부끄럼이듯 부끄럼 일 듯 한두 가지에 배롱꽃 피어날 때


너를 바로는 보지 못하고 차마 한꺼번에 볼 수도 없던 때
눈만 겨우 보고 심연인 듯 잠겨 있다가 아니 본 듯 복사빛 네 볼을 보고 몰래 콧날 볼 수 있을 때까지는 복숭아나무도 그 꽃까지 생각할 때 그렇게 더디고 즐거이 입과 귀를 그려 넣을 때
내 안에서 네 이목구비가 한 송이씩 꽃으로 피어날 때


이목구비 다 벙글어 네가 한 송이 커다란 꽃으로 피기도 전
부끄럼이듯 부끄럼 일 듯 내가 먼저 붉어질 때
죄 지은 듯 마음 덜컹거릴 때



*시집, 서로 따뜻하다, 황금알








비문증 - 오창렬



어느 날 눈에 벌레가 들었다
손으로 비비고 물로 헹궈도 씻어지지 않는,
눈뜨면 홀연 떠오는 한 마리, 두 마리,


두리번거려 너를 찾아도 소용없다, 소용없다,
부정하는 벌레들


눈을 떠도 눈 감아도 보이던 시절 지나가고,
눈 감아도 눈을 떠도 네 모습 떠오르지 않는 때가 문득 찾아오고,
그런 때가 또 한 시절을 이룰 무렵



*비문증(飛蚊症) - 시야 속에 희미하게 모기와 같은 것이 보이며, 시선을 움직이면 그에 따라서 이동하는 것 같이 보이는 증세. 흔히 '모기가 떠다닌다'고 하여 비문증(飛蚊症)이라 함.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겨냥하다 - 안태현  (0) 2019.09.19
코스모스 - 사윤수  (0) 2019.09.19
구월의 이틀 - 류시화   (0) 2019.09.17
말 - 복효근  (0) 2019.09.17
철들기 좋은 시간 - 이성배  (0) 201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