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구름의 서쪽 - 주영중

마루안 2019. 9. 10. 19:56



구름의 서쪽 - 주영중



내륙을 적시는 바이칼 호
침묵처럼 말이 번진다


태양을 등진 채 구름의 서쪽으로,
떠나는 자로서 나는 묻는다


왜 이리 황량한가, 입국 불허자의 심정이 되어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버려진 사람처럼


타인에서 타인으로, 바깥에서 바깥으로
몰래 손님처럼


나는 잉여의 냄새를 쫓는 추적자
윤리를 버리고 잉여를 취하는 사냥꾼


나는 굴러다니는 돌, 굴러다니는 얼굴
입술의 말단에서 찌그러진 음성이 터져 나온다


미지의 그림자에 이끌려
심장이 향하는 쪽으로,


시간이 게워 놓은 것들을
기꺼이 응대할 것


나는 결국 그들에게로 이르는 끊긴 다리일 뿐
물음은 안에서 오고 바깥에서  온다


가령, 고요와 불안이 교차하는 곳에서
혁명은 싹텄는지 모른다


사랑할 수 없는 날이 오면,
떠날 것
무언의 직물을 짜고 있는 구름처럼


물음은 떠남에 있지
그래도 떠남은 돌아오는 것


나는 지나간 것들을 모르고
너는 잊는 기술을 모르고


저기 버려져 비옥한 검은 흙들을 넘어
소음이 나를 몰아가는 곳으로



*시집, 결코 안녕인 세계, 민음사








박수무당 - 주영중



이곳과 저곳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란
남의 운명을 가만히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란


불편한 응시
미지의 기운이 이끄는
힘의 자장을, 몸으로 정녕
무심히, 누군가


운명을 잠시 손으로 만지고 간 것처럼, 누군가
눈으로 운명을 응시하고 간 것처럼
심장이 뛴다


멀리 내다보는 일이란, 허망한
무섭거나 소름 끼치는
아주 멀리에서
심장과 심장이 잠시 조우하는 일이란
운명이 잠시 겹쳐지는 일이란
불가해하고도 먼,






# 주영중 시인은 1968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현대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결코 안녕인 세계>, <생환하라, 음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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