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달 - 신동호

마루안 2019. 9. 10. 19:07

 

 

달 - 신동호


달에게 빌었던 어머니의 소원 중 몇 번의 소원이 이뤄졌을까. 대부분은 이뤄지지 못했을 거 같다. 대부분은 자식들 잘되길 빌었을 터이니 말이다.

달에게 빌었던 나의 소원 중 몇 번의 소원이 이뤄졌을까. 대부분은 이뤄지지 못했을 거 같다. 대부분은 나부터 잘되길 빌었으니 말이다.

이제 자식들 잘되라고 소원을 빌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둥근 등이 보름달이었음을 깨닫는다. 달에 업혀서 잠든 세월이 있어 달이 그리웠던 게다.

달에게 빌었던 소원들이 아직 이뤄지지 못한들 어떨까. 달그림자가 길어질 때 어머니와 나의 밤엔 또 하나의 그리움이 피어날 터이니 말이다.

 

 

*시집, 장촌냉면집 아저씨는어디 갔을까?, 실천문학사

 

 

 

 

 

 

백별님 - 신동호


봉건의 그늘이 가방 안에 가득 담겼다
혁명을 해야 하는 사내들은 뒷짐을 지고 양반처럼 걸었고
다섯 개의 가방을 짊어진 별님이만 전사처럼 걸었다

백두산은 문맹처럼 그저 시시덕거렸다
임꺽정의 아내 운총이가
미나리 냄새를 확 풍기며 자작나무 숲으로 뛰어갔다
글을 익힌 꺽정이만 걱정이 많아 보였다

미인송들이 사회주의처럼 줄지어 선 백두산
만주의 바람이 빨치산처럼 갑호경비도로를 지나는 동안
항일의 전설들이 풀잎처럼 흔들거리는구나

삼지연 물결만 잔잔하게 추억을 더듬는다
진달래는 혁명사를 교양하듯 흐드러지게 붉기만 하고
별님이의 노래는 남쪽 사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가슴이 식어버린, 서림이 같은

머릿속 문자들을 모두 지우고 학습된 몸짓도 모두 잊고
가방은 자본주의의 오빠들이 들어줄게
별님아, 生은 하산길처럼 자꾸 뒤돌아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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